손쉬운 장류제조법 (41회)
  제6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2

손 쉬운 장류제조법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조미식품의 하나인 간장, 된장, 고추장은 옛날부터 전해오던 재래식으로 담구어 왔으나 근래에 와서 이것을 과학화시켜 개량식으로 담그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량식도 그것은 만드는 중간제품인 메주에 해당하는 코지를 만들려면 코지실이 있어야 하고, 코지실을 소독해야 하고 여러 가지 손질을 해야 하는 등 장비와 조작이 번거로워 해방 후부터 농촌진흥청등 여러 기관에서 보급에 힘써 왔으나 그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필자는 이것을 개량하여 비닐텐트만을 사용하고 도중에 번거로운 손질을 하지 않고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발표한 바 여러 가지 일간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 장류제조법을 79년 4월 18일에 서울 영동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전국 주부교실의 군, 도 대표들에게 식생활 개선형식으로 교육을 하였는데, 이들 대표들은 자기들의 군, 또는 도로 돌아가 다시 그곳의 주부들에게 전달교육을 하게 되어 있었다. 

79년 5월 23일에는 수원의 주부교실에서도 이 장류제조법의 강습을 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KBS에서 아침830프로에 나와서 이 장류제조법에 대해서 방송을 해달라고 한다. 지정된 날짜인 82년 3월 3일 아침 일찍이 차를 몰고 KBS로 갔다. 이미 전 직원이 나와 있어 바삐 돌아가고 있는데, 타이프 친 것을 받아보니 대체로 방송할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방송실에는 어떻게 동원했는지는 모르나 이미 상당한 수의 주부가 걸상에 앉아 있는데 앞에 한 사람이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야단법석이다. 며칠 전에TV촬영 자동차와 함께 수원 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현장을 찍은 바도 있고 하여 여러 가지로 종합해보니 이 프로 하나 내보내는데 여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준비와 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 

보통 우리 교수들이야 TV에 출연해달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 양 한참 뒤로 빼다가 마지못해 승낙하는 식으로 응하되 가볍게 간단한 노트하나 가지고 덜렁덜렁 방송현장에 나가는 것과는 달리 큰 차이가 난다. 
 
▲ 보리를 이용한 새 장 담그기

여장부 형수님 

군복무 시절의 회고에서 적었듯이 51년 8월 15일에 중형이 영동에서 시내에 침입한 빨치산의 총알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그 산소는 영동 화신리라는 곳에 있었다. 29살에 혼자되신 형수님께서 3남매를 기르셨는데, 그 맏딸 내외가 일찍이 미국에 가서 사업에 성공하여 그 어머님을 모신다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었다. 

어느 날 형수님이 집에 오시더니 형님의 유골을 국군묘지로 옮기겠단다. 동생인 나도 엄두도 못 낼 일을 형수님은 이미 여러 가지 수속절차를 끝마친 후인지라 형님 유골을 화장하여 모시고 오면 된다고 한다. 여자는 약하고 어머니는 강하다는 소리는 옛날부터 들은 바는 있는 것 같으나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서 어머니가 아닌 아내로서 강한 면이다. 

이미 하나 있는 조카를 혼자 손으로 영동중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영등포고등학교로 옮겨 졸업시킨 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식품공학과를 입학, 졸업시켜 당당한 사회의 일꾼으로 키운 바 있는데 이제 와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치마를 두른 여자가 이루어놓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형수님의 뜻대로 영동에 가서 4월 20일 화장을 하여 내 차로 유골을 국군묘지로 임시 모셨다가 날짜를 8월 20일로 정하여 진혼제를 지내고 경찰묘역에 26부록 298호로 안장하였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형님을 잃으시고 홀로 여러 조카를 성취시키고 82년 10월 18일 멀리 미국으로 떠나시는 형수님 그 앞날에 행운이 깃드시기를 빕니다!

OOO

가을이 되니 학교에서는 예년과 같이 데모가 일어났는데 11월 17일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학교강의는 주로 식품공학과 학생에게 하였는데, 1학기에 식품화학을 3학년, 농산식품가공1을 4학년, 식품관리학을 대학원 학생에게 강의하였고 2학기에는 영양화학과 식품분석실험을 3학년 학생에게, 농산식품가공2와 식품가공실험을 4학년 학생에게, 그리고 단백질식품학을 대학원학생에게 가르쳤다. 

1983년이 되었다. 본인이 지도교수로 되어 있는 동덕여자대학교 교수인 윤석권 선생의 박사논문을 심사하여 83년 2월에 농학박사학위를 취득케 하였다. 

봄에 장남 중호의 혼처가 생겨 급하게 서로 혼인할 뜻이 이루어져 5월 11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영보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연안 김씨인 현정으로 사돈은 군산의 수산전문대학 학장인 김학수 씨이다. 

7월 30일에 군산 사돈집을 방문하였다. 

학부 강의는 전해와 같으나 2학기에 대학원 강의로서 식품가공연구법을 담당하였다. 

매년 개최되는 경기도 미술대회에서 둘째딸인 순호가 그린 동양화가 의외로 최우수상으로 뽑혀 9월 23일 수상을 했다. 

본인이 지도하는 충복대학교의 민용규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여 84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케 하였다.

 
  변혁기의 학생 (40회)
  불운의 교통사고 (42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