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한의과 대학 교수가 되다
1991년 2월 23일에 장남 중호가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 2월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경비사령부에서 2년간 군복무를 마친 다음 83년 3월부터 86년 2월까지 수련의, 전문의를 거쳐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임상의로 근무하였으나, 91년 3월부로 한의과대학 조교수로 정식 발령이 났다.
1973년 말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한의학과에 입학시험을 칠 때에는 이왕 의학을 하려면 양의학 쪽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기도 하였으나 집안에 한의사를 하는 어떤 노인의 권유를 받았는지 구태여 한방쪽으로 공부하더니 이럭저럭 그 방면에 자리를 굳힌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사람의 병은 자기 스스로의 자연치유력이 중요한데, 양의학에서는 주로 병이 발생한 국소를 치유하는 대증요법을 하는 것에 비하여 한방에서는 인체의 각 기관이 서로 견제하고 조절력을 통하여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어떤 병이라도 기를 돋구고 인체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치료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그 당시의 아들의 선택도 현명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인술로서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을 치료하여 광명의 삶으로 이끌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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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남 한의학박사 취득 기념 (1991.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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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지성
옛날부터 아내와 자식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 한다. 그러나 나의 생에서 아내의 지성과 노고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내는 1947년 4월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부터 내가 공부하러 가고 없는 영동의 본가에 와서 엄하신 시부모 슬하에서 옛날 우리 부모님이 하시는 시집살이를 시작하였다. 영동의 큰 집은 15명에 가까운 대가족이었는데, 새 동서의 끝으로서 가 많은 밥짓기, 빨래하기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고추당추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를 하였다.
1950년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 남들과 같이 한 때는 새 살림을 할 꿈에 부풀기도 하였으나 비극의 6.25사변이 일어나 우리 집의 대가족과 함께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그 무거운 피난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정처없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필자가 군에 입대할 때는 생사간을 헤메게 될 남편과 기약없이 헤어지고 나서는 옛날과 다름없는 고된 시집살이 중에는 나의 안위를 염려하는 눈물로 배개를 적시는 밤을 수없이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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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날 수원 고등동 우거에서 내자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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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 육군사관학교로 전속되지 7년간 우리집 살이를 청산하고 새 살림을 나기는 했으나 호구조차 지탱하기 어려운 궁핍한 셋방살이에서 6개월~ 1년마다 새집을 옮겨가며 남편과 아이들만 제대로 먹게 하고 자기는 때를 거르거나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땔감인 연탄을 살 돈이 모자라 제재소에 가서 목재를 켜고 난 찌꺼기 나무를 사서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채 머리에 이고 날라다가 불울 지펴 겨우 찬 방을 면해야 했다.
내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2년간 미국에 연구차 갔을 때에는 수원의 평동에 있는 학교의 사택에서 홀로 어린 네 아들을 데리고 찌들게 가난하여 밭일을 해가며 구차하고 외로운 삶을 이어갔다.
1960년 이후 영동의 본가가 사업 부진으로 쇠퇴하자 1963년 7월에 양친께서는 수원의 저희집에 오셨으나 두 분다 같이 노환으로 거동이 자유스럽지 못하였으므로 매사에 대하여 내 아내가 뒷바라지를 하였다.
특히 2년 반이 지난 66년 초에 아버지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후부터는 아버지의 배설물을 아내가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요사이 같으면 병원에 입원도 시킬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때의 집안형편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어서 부득불 집에서 간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1년 반을 여러 아이들을 기르면서 간병하여 배설물을 묵묵히 받아냈다.
그 당시는 수원도 그다지 물사정이 좋지 못하여 그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그 먼 서호까지 겨울, 여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왕래하여야 하였으니 그 고초 오죽하였겠는가! 요사이 세대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요사이 자식들을 하나나 둘을 낳는데, 대개 병원에 가서 낳고 이들을 기르고 교육시키는데 절절 매는 것에 비하여 아내는 6남매나 되는 아이들을 낳았으나 요사이 그 흔한 산부인과의 신세 하나지지 않았고, 이들이 어릴 때에는 하나 같이 등에 업고 여러 가지 일을 하였으니 그 고생이 어떻게 필설로 다 할수 있으랴!
이와 같이 어려운 살림에도 불평하나 할 줄 모르고 소와같이 묵묵히 꾸려왔으니 이것이 고래의 한국여인의 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필자가 팔불출의 못난이로 낙인이 찍힐망정 이것으로 아내의 그간의 노고와 지성에 대한 나의 빚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다면 어찌 주저할 수 있겠는가!
아내여 그간 여러 자식들을 둘러메고 이때까지 기관차처럼 달려오고 보니 막내딸 정호만을 남기고 이럭저럭 사람구실 할 수 있게 성취까지 시켰으므로 우리들의 책임은 어느 정도 다 한듯하니 이제 한숨 놓고 다 함께 천수를 다 하게끔 노력하여 어렵게 살아온 인고의 삶의 보람을 조금이라도 맛이나 보고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