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기차의 구경 (50회)

옛날에는 10년이 지나야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어떻게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지 아마 오늘날의 1년은 옛날의 10년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살아온 65년간에 내 주관에서 보고 듣고 한 문명화와 사회변화의 발자취를 회고하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

옛날의 시골집

이미 어린시절의 회고에 적었듯이 내가 태어나서 10살까지 자란 선산군 구미면 송정동의 푸메라는 마을은 약 25호되는 흔히 보는 농촌마을로서 이들 집은 흙을 이겨서 만든 소위 흙벽돌로 아무렇게나 지은 집들이었다. 벽은 대개 아무 종이도 바르지 않았으므로 손으로 문지르면 고운 흙이 묻어나며 바닥은 부들풀로 엮은 깔개대자리가 깔려 있었다.

물론 전기라고는 없고 호롱불을 켜고 저녁을 지냈다. 변소는 밑에 액체가 많이 들어있는 웅덩이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판자를 놓고 그 판자 위에 올라 앉아 일을 보는 재래식이 옥외에 있었다. 대부분의 변소는 정식으로 문이라고는 없고, 거적대기 같은 것을 적당히 달아 매 놓아 적당히 내부를 가리게 되어 있었다.

대개 변소를 치고 난 후에 일을 볼 때는 그 덩어리가 밑으로 떨어지면 철퍼덕 하고 냄새가 지독한 액체가 튀어올라 부드러운 엉덩이 부분에 묻게 되므로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일을 보고 난 다음에는 휴지는 몰론 종이라고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울 때이므로 한쪽 옆에 놓여 있는 집단에서의 몇 오라기의 지푸라기를 빼내어 몇 겹으로 접어 그곳을 훔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곳은 항상 불순할 수밖에 없었다.

목욕통을 만들고 있는 집은 볼 수 없고 남자는 여름에 찬물을 틀어 등허리부터 붓는 것이 목욕이므로 겨울에는 거의 목욕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히 오래 입은 의복에서는 이를 언제나 잡을 수 있고 내의에서는 이의 알인 씨가리가 많았다.

재래식 부엌에서는 산에서 해온 장작 등의 나무를 아궁이에 지펴 불을 때서 밥도 짓고 그 불이 온돌 속으로 들어가 방을 따뜻하게 덮히고 있었다. 집의 벽은 흙벽돌로 쌓았으므로 두꺼워서 벽 자체는 보온이 잘 되는 편이나 문은 문종이로 발라져 있으므로 겨울에는 외풍이 너무 세서 방바닥은 뜨겁게 끓어도 방의 공기는 언제나 차서 대개 웅크리고 지내는 수가 많았다.

온 동네에 자전차가 2대 있었는데 이것은 대단한 재산으로 항상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고 자전거의 타이어가 펑크가 나면 시내까지 가는 수는 드물고 대개 주인이 집에서 풀을 붙여 때웠다.

물론 자전거 같은 문화의 기구는 누구집에서나 볼 수는 없었고, 대부분의 큰 집에서는 별도로 방앗간이 있어 그때그때의 먹을 양식을 디딜방아로 찧어서 먹었다.

자전거와 기차의 구경

어른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물론 경부선 철도가 놓이지 않은 그 옛날의 일이다. 경북 선산 고을에 서울서 선교사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한다. 그 당시 구경이라고는 도대체 여간해서 있을 수 없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으므로 이것은 큰 구경거리였다. 가까운 동네는 물론 상당히 먼 곳까지 소문이 퍼지니 밥을 싸가지고 온 구경꾼이 많이 모였다.

커다란 쇠로 만든 2개의 바퀴가 있고 손잡이 같은 반짝거리는 가는 막대기가 구부정하게 달려있는 보지 못하던 물건이 세워져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직성이 풀리지 않으나 별 신통한 도리가 없었다. 집안에서 볼 일을 다 보았는지 저승에서 온 사자 같은 검은 옷을 입었으나 코가 유난히 큰 선교사가 나오는 것을 본 구경꾼은 다시 자전거 주위에 몰려들었다.

▲ 1930년대초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

여러 사람 중에서 배짱 좋은 사람이 선교사에게 다가가 한 번 저것을 타보자고 하니 타보라고 한다. 그 사람은 다리를 걸쳐 안장에 앉고 아무리 타보려고 애를 써도 쓰러지기만 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타는 것일까? 아무리 해도 될 수 없자 그 선교사에게 한번 타보라고 했더니 선교사는 자전거를 몇 발자국 몰고가다가 슬쩍 다리를 올려 타더니 자빠지지도 않고 발을 저으면서 가는 것이 아닌가.

조화다. 이것은 하느님을 믿어야만 될 수 있는 조화인 것이다. 저 문명의 자취를 보지 못한 미개 토인국에서 자전거가 나타났을 때 그 신기한 광경이 우리나라 경북 선산 고을에서 1980~189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의 우리나라의 어떤 고을에서 이러한 문명의 이기와 접촉한 역사이리라.

그 후 1905년 1월에 경부선 철도가 놓여 지고 나서는 일부러 도시락을 싸가지고 기차라는 쇠로 만든 달리는 괴물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어떤 결단성 있는 사람은 당시의 형편으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처지를 부러워한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기차를 타본 기분이 어떠했는가를 물어보기도 하였다 한다.

아마 요사이 시골사람이 소련. 중공, 동구라파 등으로 여행하고 온 사람에 대한 동경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까?

보통학교 학생

내가 5~6살 나던 해니까 1930년대일 것이다. 비교적 개명한 집에서만 지금의 초등학교인 그 당시의 보통학교에 그 자녀를 보냈는데, 장가를 간 학생도 섞여 있었고 대개 한 학년이 50명, 한 학급 또는 두 학급이 고작이었다.

그때는 노트라는 말은 없었고 공책 또는 필기장이라고 불렀는데 누구나 커다란 백노지라 하여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한 흰종이를 사와서 여러 번 적당한 크기로 접어 칼이나 가위로 끊어서 공책을 만들어 썼다.

습자 시간에는 헌 신문지에 붓글씨를 썼으니 어느 학생이나 연습을 할 수 있었으나 도예시간에는 그렇지 못했다. 약 50명 반에서 약 10명 정도만 크레용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학생은 크레용이 없었으므로 이들은 그 시간에 우두커니 그대로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그리하였으니 그때는 그것이 통했던 것ㄱ이다.

휴식시간 또는 점심시간에는 대개 상대편의 진에 먼저 손을 대는 편이 이기는 진도리라는 놀이 아니면 막대기를 번갈아 치는 자치놀이를 하였고 그 당시는 공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축구는 별로 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몰랑몰랑한 찰고무로 만든 작은 공이 생기면 이것은 대단한 운동기구였다.

구미에서 보통학교를 다닐 때 기억나는 것은 그때 조선총독인 우가기라는 자가 농촌진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보통학교 다니는 학생도 짚신을 신을 것을 강요하다시피 하였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여학생은 고무신을 학교 근처에까지 신고와서 아는 집에 맡겨두고 거기서 짚신으로 갈아 신고 학교에 등교 하였다.

보통학교 3~4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를 한 끝에 신문에 보니 사진을 전기줄로 먼 곳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여 전깃줄로 사진을 보낼 수 있을까 신기한 일이라고 이아기하셨다. 지금 말하는 전송사진이 그때 발명한 것 같았다.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그 학교에 고등과라 하여 2년간 더 다니는 수가 있었으나 진짜 상급학교인 중학교나 사범학교, 실업학교를 가는 것은 한 반에 1~2명 있을까 말까이며 학교성적이나 경제력으로 보아 거의 불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