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들어갔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나가도가와라는 학구파 일본인 선생이었는데, 전문학교도 나오지 않고 검정고시 시험으로 중학교사가 되어 독학으로 성공하였다 하여 학생들의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1학기 중간에 그 선생님이 병환이 났다. 폐결핵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의, 결핵이라면 거의 불치의 병이다. 그때 영동의 동편에 빨간 벽돌집으로 크게 우뚝 솟은 구세군 병원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그 당시에는 경부선에서 볼 때 최신식으로 지어진 신식이었다.
선생님이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니 급장을 맡고 있는 내가 자주 아니가 볼 수가 없었다. 한번은 문병을 갔을 때 변이 동하여 화장실에 갔다. 참 깨끗하고 변소치고는 너무 아깝다. 이때 내가 수세식 화장실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2학기에 가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후임으로 일본의 타직전문학교를 졸업하시고 영동에 있는 부설중등교원양성소를 나오신 김창도 선생님이 우리 담임으로 오셨는데, 이 선생님은 성품이 대단히 온하시고 인자하였다.
실패한 동맹휴학
그런데 2학기부터 되지도 못한 2학년이 1학년에게 기합을 넣는다하여 어떻게나 들볶고 괴롭히는지 2학기에 가서는 불만이 쌓여 거의 참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담임인 김 선생님에게 일러 보아도 별 도리가 없었다.
2학년 담임은 일본군 예비역 중위인 이리에[入江主計] 선생인데, 그때는 군인의 입김이 원체 센 시대이고 보니 성품이 유하신 김 선생님께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 당시 우리들은 일본 사람에 대한 반응도 가세하여 1학년의 불만이 극에 이르다보니 급장인 나로서는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야 될 것 같았다.
여러 가지로 많이 생각한 끝에 어느 날 지금은 영동여자교등학교로 되어 있는 그 당시의 신사(神社)가 있는 산에 학생 대부분을 모이게 하였다. 이것저것 숙의 끝에 실력을 보이자면 동맹휴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계획을 짰다. 내일 밤을 D데이로 하는데, 그다지 집이 멀지 않은 시골학생은 미리 내일 일찍이 곧 집으로 가고 기숙사 학생은 내일 밤 학교 뒷산에서 꽹과리를 치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 짐을 싸가지고 집으로 도망가게 하였다. 그런데 주동자로서의 급장인 나의 처신이 문제였다.
하여튼 어디에라도 다른 곳에 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밤에 아버지에게 우리들의 억울함과 거사계획을 설명드린 다음 어디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것을 들으신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채 당장 일어서면서 “너희들 미쳤구나. 철이 없어도 어지간해야지.” 하시면서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곧바로 교장 사택에 가시더니 우리들이 모의한 내용을 교장에게 자세히 고지하시고 말았다.
일은 다 틀렸다. 비상이다. 나는 급히 달려가서 내일 가까운 시골집으로 떠나게 되어 있는 학생을 위시하여 전 학생에게 거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보니 신영철 이라는 한 학생만이 빠지고 전원 출석하였다.
학교에서는 정식수업과목을 전폐하고 야단이 났다. 구변이 별로 좋은 편이 못되는 교장선생님은 그저 “큰일 날 짓을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스트라이크냐!” 이 소리만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신을 교장선생님이 가르치시는데 한 학기 내내 수신시간만 되면 정식 수업을 제쳐두고 이 소리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스트라이크 중지 연락을 받지 못하여 당일 결석을 하고만 신군은 이유 없이 학년말 성적표의 품행이 병(丙)이었다. 내가 주동이면서도 아버지가 미리 고지하신 덕분인지 나는 별일 없었다. 그날 결석한 친구는 근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동창들이 모이면 그때의 억울함을 나에게 불평해대는 것이었다.
사실 그대로 동맹휴학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를 위시한 몇 사람은 유치장 감이며 그것으로 오는 역효과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과연 이대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전시의 영동농업학교 학생
그 당시 농업학교는 학교라는 간판만 달아 놓은채 이미 학교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근로의 기쁨을 심어준다는 취지 아래 거의 노동자가 다될 정도로 일을 많이 하였고, 군사교육도 심하게 하는 군인양성소였다. 그 당시의 농업학교 앞의 길은 논을 학생들이 단가를 어깨에 매고 흙을 옮겨 평평한 운동장으로 메꾸었으니 말이다.
1942년 12월 8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2차세계대전(자기들이 말하는 소위 대동아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난 초기에는 매주 한번 정도 영동에 있는 전 학생들을 큰 강당에 모아놓고 병사와 계급 높은 귀환 일본군 장교가 와서 미영격멸을 외치면서 열을 올리며 강연을 하였고, 후에 가서도 이 숙(熟) 올림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했을 것이다.
일본군이 초기에는 전격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다음해 10월에는 말레이 반도 해협에서 미국의 신설점함을 격침시켰고 육군은 무손섬에 상륙, 12월에는 괌도와 영령(英領)의 여러 섬을 점령하는 듯 파죽지세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인도네시아와 버마가 떨어지는 들 일본제국의 기세가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이러는 동안에 큰 전과가 날 때마다 조오진(등불)행진을 하는 들 축하행진이 벌어지고 야단났다.
우리 학생들은 그 행사에 동원되는 단골메뉴였다. 그리고 영동 동쪽의 산 위에 있는 신사에 끌려올라가 황군의 무운장구의 동양평화를 빌고 황동정신을 함양한다고 하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일구어서 작물을 심었고, 학기 중의 일정기간은 식량증산의 일환이라 하여 각 학교 별로 어떤 산을 일정한 면적 개간하여 메밀을 심기도 했다. 그리고 방학 때에는 전쟁에 부족한 물자를 보충한다하여 어김없이 송탄유를 만드는 재료로서 산에 가서 소나무가지를 베고 난 솔갱이 아니면 소나무 밑둥지를 수집해서 납품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영동역에 나가서 중국의 일선으로 출정하는 일본군을 환송케 하였다. 어느 날 또 영동역에 나가서 어느 때와 같이 개척 용사를 환송하란다. 가보니 이번에는 시골사람들이 같이 식량공출 등으로 견디다 못하여 북간도라하는 만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올망졸망한 짐을 싼 보따리를 여러 개 가지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어린자식들과 함께 무질서하게 역 광장의 한쪽에 너절하게 앉아 있었다.
그쪽으로 우리 일행이 쭉 서고 내가 앞에 나가 그것도 일본말로 (그 사람들 중 몇 사람이나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는지)식량증산이니 개척정신이니 하며 일장 연설조의 인사말을 해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쓴 웃음이 난다.
그때 떠난 사람들이 근래 어렵게 살아가는 중공의 북간도 흑룡강성 또는 길림성 등에 있는 우리 동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