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모인 특강시간(特講時間)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자(演者)의 성함은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내로라하는 언론인이었다. 인생철학(人生哲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강연도중(講演途中)에 “학생 여러분! 법(法)의 유진오(兪鎭午) 선배와 의(醫)의 김성진(金晟鎭) 선배를 아십니까? 이 훌륭한 두 선배를 잊지 마시오. 일본인(日本人) 학생이건 반도출신(半島出身) 학생이든 간에 훌륭한 선배를 훌륭한 선배로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하고 거침없이 말한다.
일본인 학생(日本人 學生)이 압도적으로 많은 대학(大學)(평균(平均) 70~80%)이지만 누구도 이 두 사람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연자(演者)가 일본인(日本人)이었기 때문인지, 이 설명(說明)이 젊은 필자에게는 대단히 감명을 주었다.
그 후 김성진 선생(金晟鎭 先生)님에 대하여도 관심이 많아 졌고 관심은 점차 흠모(欽慕)의 정(情)으로 변(變)했다.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되자 선생(先生)님께서는 모교의 교수로 보임(赴任)하시어 교육자로서 진가를 발휘하시던 중 6·25 동란(動亂)이 발발하자 솔선 군(軍)에 들어가셔서 군진의학발전(軍陳醫學發展)과 더불어 국토방위(國土防衛)에 몸을 바치셨다.
1955년 필자가 미국 미네소타대학(大學)에서 보건학(保健學)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연말(年末)이 가까운 어느 날, 당시 필자의 지도교수(指導敎授)이자 보건대학원장(保健大學院長)이었던 유명한 보건행정학자(保健行政學者) 앤더슨 박사(博士)로부터 호출(呼出)을 받았다. 약속된 시간에 출두하였더니 축하(祝賀)한다고 첫마디를 꺼낸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멍청하게 서 있었더니 앉으라고 하면서 모교의 학장으로 김성진(金晟鎭) 선생님께서 취임(就任)하셨다고 전해준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김(金)박사의 인품과 실력이 탁월(卓越)하다고 전문(傳聞)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을 모시게 된 당신의 모교는 반드시 빛날 것이라며 필자보다도 더 반가워한다.
필자는 용기백배(勇氣百倍)하였다. 우리나라의 의학자(醫學者)가 미국(美國)의 대학에서 이만큼 평가(評價)받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였다. 앤더슨 박사(博士)는 선생님의 의학적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친 재능과 취미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앤더슨 박사(博士)가 어떤 사정으로 선생(先生)님에 관하여 그 같이 소상하게 알게 되었는지는 필자도 알 길이 없다. 선생님에게 경의를 표하던 앤더슨 박사(博士)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회상되는 한편,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 그의 성의와 호의에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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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12월 25일자에 실린 김성진 선생의 근황을 소개한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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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걸어오신 발자취를 살펴보면 과연 인물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보사부장관(保社部長官)으로서 국정(國政)에 참여하셨는가 하면 국회의원(國會議員)으로서 의정활동(議政活動9을 하셨고 한양로타리클럽 회장이나 국제로타리클럽 한국지구 총재(總裁)로서 천직(天職)의 재능(才能)을 발휘하시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경기중ㆍ고등학교 동창회장(同窓會長)으로서 또는 서울의대 동창회장으로서 모교애(母校愛)를 심어주시기도 하였다. 한때는 대한결핵협회장(大韓結核協會長)으로서 보건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아 올리시기도 하였다.
사회분야의 활동(活動)은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면관계(紙面關係)로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다만 초인적 존재(超人的 存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点)만을 부언(附言)한다.
그 많은 활동도 활동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전문분야에 쌓아올리신 금자탑(金字塔)이야말로 찬란한 것이다. 우리나라 외과분야(外科分野) 뿐만 아니라 국제외과분야(國際外科分野)에서도 선생님의 업적(業績)은 눈부신 바 있다. 이미 26년 전 국제외과학회(國際外科學會) 한국지부장(韓國支部長)으로서 활동하시던 시절의 업적이 지금도 후학(後學)들에게 많은 교훈(敎訓)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식자(識者)들은 주지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저명한 외과학(外科學) 교수(敎授)였던 완겐스틴 박사(博士)의 ‘장폐색(腸閉塞)’에 관한 명저에 선생님의 논문이 인용되고 있는 것은 선생(先生)님 개인은 물론 우리 모두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연구결과와 완겐스틴 박사(博士)의 연구결과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선생님의 수필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매료(魅了)된다. 수필집으로 ‘덤으로 산다’, ‘쑥꽃 사어록(私語錄)’, ‘천자춘추(千字春秋)’, ‘대학교수 수필집(大學敎授 隨筆集)’, ‘개구쟁이 시절(時節)’ 등이 지금도 광범한 독자층을 보유(保有)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선생님의 수필에 접하면 누구나 정밀하고도 여유 있는 관찰력과 과학적이고도 운치 있는 판단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름답고도 현대감각(現代感覺)을 풍겨주는 문장력(文章力)과 표현력(表現力)에 관하여는 사족(蛇足)을 붙일 필요가 없는 줄로 안다.
요사이는 자주 뵙지 못하여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노익장(老益壯)을 과시(誇示)하고 계시다고 전문(傳聞)할 때마다 기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나 사모님의 병환을 걱정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한이 없다. 수훈하신 일등급 훈장(一等級 勳章)인 수교훈장(修交勳章)(광화장(光化章))이나 서독 십자훈장(西獨 十字勳章)과 같이 선생님께서 더욱 빛을 내시고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심을 축원(祝願)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상은 ‘주간 건강(週刊 健康)’이 의약(醫藥) 100인(人)을 선정하여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한 특별기획의 일부인데 그렇게도 정성을 쏟으시던 사모님께서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미국에서는 장남 시한(時漢)씨와 장녀 정한(貞漢)여사가 모시고 있다. 두 분 다 의료계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특히 정한(貞漢)여사는 효녀의 귀감(龜鑑)이며 선생님은 심청이라는 별명으로 부르신다. 국내에서는 서랑인 이현재(李賢宰) 전 총리가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친가 어른이나 처가 어른에 대한 이(李)총리의 효심은 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91년 6월 27일 선생님께서는 파란 많은 일생을 마치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선생님께서는 떠나셨지만, 유훈(遺訓)은 언제고 우리들을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