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권씨(安東 權氏) 화수회(花樹會)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서울대 총장시절에 안동 권(安東 權)씨 화수회 총회가 있으니 꼭 참석해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서쪽의 관악산 진입로 근방 공지에서 열리는 총회였고, 또 주말이었기 때문에 불참할 명분이 없었다. 제법 많은 종친들이 모였고 화기애애한 한나절을 보냈다. 이것이 화수회와 접하게 된 최초의 기회였다.
그러나 중앙화수회의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화수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등에 관하여는 전연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 기회가 생겼다. 1980년 10월부터 81년 4월까지 6개월간 입법회의 의원(立法會議 議員)으로 위촉된 일이 있었다. 나는 입법회의 문공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서울대 총장자격으로 이 위원회에 참가하였다. 국회가 구성되기 전에 그 기능을 대행하기 위해 조직된 것인데 당시의 일들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중앙 화수회의 권태흥(權泰興) 회장 명의의 축하패를 받았는데 이것을 계기로 하여 화수회가 하는 일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1985년 4월에 화수회(花樹會) 회장(會長) 취임교섭을 받았다. 화수회에 관하여 아는 바도 없었고 별로 관심도 없던 처지여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두 차례 또 교섭이 왔다. 역시 사절했다. 당시 회장이던 달안(達顔)족이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사퇴를 하게 되었으니 잔여임기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회장직은 물론이고 화수회 자체에 대해서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하루는 익현(翊鉉)족과 정달(正達)족의 권유를 받았다. 당시 두 분은 여권의 실력자였다. 뒤에서 적극적으로 도울 터이니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 오히려 두 분 중에 한 분이 맡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정치하는 사람은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시간도 빼앗지 않고 괴롭게 하지도 않겠으니 권문(權門)을 위해서 수락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이렇게 하여 4월 21일 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워낙 보학(譜學)에는 백지상태여서 화수회 운영에는 전연 자신이 없었다. 중앙회 사무국은 당주동(唐珠洞) 100번지 소재의 세종아파트에 있으며 당시 사무국장은 영익(寧翼)족이었다. 처음 만나는 인사였지만 나와 같은 김포(金浦)출신이었기 때문에 친밀감을 느꼈다. 간혹 기회가 생기면 국장으로부터 화수회에 관한 설명을 듣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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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권씨 익현(翊鉉)족 / 권익현 씨는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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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安東 權)씨 중앙화수회는 1976년 10월에 출범했다. 초대회장은 국방장관을 역임한 중돈(仲敦)족이었고, 2대는 국회의원이던 오태(五台)족, 3 · 4대는 태흥무역(주) 회장이던 태흥(泰興)족, 그리고 5대는 경기화학(주) 회장인 달안(達顔)족이었다. 나는 달안(達顔)족의 잔여임기를 메꾸기 위해 취임하였는데 다음해, 즉 86년 4월 총회에서 정식으로 회장에 선출되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대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총회에서는 화수회의 명칭문제도 다루어졌다. 즉 족친 간의 화목을 보다 돈독하게 한다는 뜻에서 종친회(宗親會)로 개칭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회장단 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86년 총회를 계기로 종친회가 정식명칭으로 채택되었다.
회장취임 때에 두 가지 공약을 하였다. 하나는 권문(權門)의 대동단결이고 다른 하나는 회관건립이었다. 안동 권씨(安東 權氏)가 안동(安東)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조인 태사공(太史公)의 묘소를 안동군 서후면 성곡리(安東郡 西後面 成谷里)의 능동(陵洞)에 모시고 있다.
태사공의 신도비각(神道碑閣)과 능동재사(陵洞齋舍)는 널리 알려져 있다. 능동재사(陵洞齋舍)의 추원루(追遠樓)와 그 뒤의 보판각(譜版閣)은 유명하다. 또한 안동시 북문동(安東市 北門洞)에는 태사묘(太師廟)가 있는데 권(權) · 김(金) · 장(張) 3태사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이다. 명종 18년 1563년에 창건하였고 6 · 25 동란 중에 소실된 것을 1960년에 중건하였다. 3태사의 위패봉안은 권(權)태사공을 주벽(主壁)으로 하고 좌우(左右)에 김(金) · 장(張) 태사를 모시고 있다. 태사묘 구내에는 강당인 숭보당(崇報堂),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보물각(寶物閣), 병산대첩을 기리는 안동(安東) 차전놀이의 전구(戰具)가 보존되어 있는 차전각(車戰閣)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안동(安東)에는 태사공을 기리는 여러 유적 · 유물이 있는데 이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대종회(大宗會) 능봉양소(陵鳳兩所)(능동(陵洞) · 봉암(鳳巖))관리위원회가 있다. 이 조직과 중앙화수회와의 관계가 반드시 원만한 것만은 아니어서 많은 족친들은 양자의 일원화를 염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한 것이 안동 권씨의 대동단결이란 공약으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공약인 회관건립문제(會舘建立問題)는 누구나가 원하는 것인데 당주동(唐珠洞) 아파트에 있는 중앙사무소가 협소하니 새로 회관을 건립하자는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공약의 실현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날이 갈수록 실감 있게 나타났다. 안동 대종회(安東 大宗會)와의 불편한 관계는 해묵은 것이어서 말과 같이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회관건립을 위하여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관건립보다 시급한 과제가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충장공(忠壯公) 권율(權慄)장군을 모시고 있는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성역화 과제, 아시조(亞始祖)인 낭중공(郎中公)의 단소(壇所)문제 등 여러 가지가 속출했으며 회관건립문제는 뒤로 밀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회관건립은 점점 어려워졌다.
89년 4월 총회에서는 다시 회장직에 선임되었다. 능력, 재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사전에 극구 사양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약사업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회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의 심정으로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임원진을 새로 갖추기도 했다. 고문(顧問)으로 관세사인 종근(鐘根)족, 전 국회의원 중동(重東)족, 기노회(耆老會)회장 태훈(泰勳)족, 전 국회의원 정달(正達)족, 전 건국대총장 영찬(寧贊)족, 전 국회의원 오훈(五勳)족, 전 연합철강(주) 회장 철현(哲鉉)족, 전 국회의원 오태(五台)족, 전 국회의원 영우(寧禹)족, 국회의원 익현(翊鉉)족, 경기화학 사장인 달안(達顔)족, 화천(貨泉)기공(株) 회장 승관(承官)족, 전 국회의원 일(逸)족을 모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