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임항 장관이 해임된 후 조성근[趙性瑾, 1922 - ]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고, 안경모[安京模, 1917. - 2010,] 씨가 차관으로 왔다. 1년 7개월의 군정(軍政)을 거쳐 1962년 국민투표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3공화국이 정식 출범한 후 전예용[全禮鎔, 1909. -1994.] 씨가 장관으로 왔다.
그 후 나는 주택공사 전무이사로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건설차관으로 임명되었다. 1964년 7월이었다. 전예용 장관과 동서지간인 사람이 내각비서로 있었는데 그가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오고, 내가 차관으로 영전한 것이었다. 내 전임이었던 안경모 씨는 교통부 장관으로 갔다.
차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내 나이 37세였다. 사실 임명 전 전예용 장관으로부터 차관으로 추천했다는 언질을 미리 받았었다. 나는 그 언질을 받고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를 두고 무척 고심했다. 내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이었지만 만으로 치면 서른다섯이었다.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 전 장관한테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툭 터놓고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그때 건설부 관리국장이 내가 육본 공병감실에서 근무할 때 공병감 과장이었는데 인격이 원만하고 사람이 괜찮았다. 나는 그분에게 “장관님이 나보고 차관을 맡아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상의를 했다. 그 분은 “젊은 나이에 차관으로 영전되는 것은 영예롭지만, 바꿔 생각하면 너무 젊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너무 일찍 출세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오. 소년출세, 중년사별, 노년빈곤을 남자의 3대 악재라고 하는 옛말도 있잖습니까?”
그 분은 “최 실장은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라고 덧붙이며 차관 직 수용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을 권했다. 나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튿날 출근해 전 장관에게 정중히 사양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퇴근했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도 상의를 했다. “차관으로 추천했다고 해서 알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내가 차관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다.”라고 하니 아내는 “알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어렵다고 하면 당신은 공직자로서 신뢰감에 엄청난 손상을 입게 된다.”며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정말 앞날이 구만리 같은 나로서는 관리국장의 말도, 아내의 말도 다 일리가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높은 공직을 맡아 출세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또 이미 추천이 되었는데 사양하게 되면 향후 공직에서 내가 신뢰를 받기가 어려워 질 가능성도 있었다. 기획관리실장직 마저도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중에 보니 기획관리실장도 이미 내정된 상태였다.
나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꼭 추천되었다고 해서 낙점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건설차관으로 나 말고도 네댓 명이 더 올라갔던 모양이었는데 차관인사에서 보사부 차관과 나만 박정희 대통령이 오케이 사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청와대 인사국에 내 사촌 인척이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최종성 건설부 차관’에다 시원스레 사인을 하더라고 전해주었다.
임명된 후 전예용 장관이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추천만 한 것뿐인데, 대통령이 여러 가지를 참작해서 최 차관을 재가 했어요.”라며 자기는 아무 공이 없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 정도로 전 장관은 진솔하면서도 점잖은 분이었다.
전예용 장관은 나한테는 아버지뻘의 연배였다. 그런데 당시 전 장관은 건설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공화당 의장서리를 겸직했다. 그러니 아침 일찍 건설부로 출근해서 결재와 업무처리를 하고 공화당사로 갔다. 이러니 국무회의뿐만 아니라 장관회의까지 다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차관에 취임한 직후 나는 퇴임한 건설부 원로들 집을 찾아다녔다. 술 한 병 사들고 찾아가 “열심히 할 테니 지도편달 해주십시오.”라며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건설부 안팎에서 “젊은 사람이 생각이 깊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라고 과분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내가 차관으로 재임하던 시기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고양되던 시기인지라 나는 국토건설의 엄중한 책무를 느꼈다. 내가 차관으로 재임한 시기가 30대에서 40대 초반까지니까 인생에서 가장 정열적인 나이였고 실제 불철주야(不撤晝夜), 새벽에서 밤늦게까지 업무에 전념했던 시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