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극심한 좌우 갈등 (36회)
  제6장 해방 후 사회생활

당시에는 우리나라 대학생의 절반 정도가 좌익이었다. 따라서 교수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같이 반공 쪽에 편드는 교수는 언제나 몸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애들과 앉아 있었는데 창문 유리가 깨지더니 자갈과 함께 협박 편지가 들어있는 손수건이 방안에 떨어졌다. “엉터리 교수는 당장 물러가라. 내일 아침 9시까지 대학에 사표를 내지 않으면 자식들을 죽이겠다.”라며 겁박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공포심으로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귀여운 자식의 목숨을 빌미로 하는 협박에 강한 부모는 없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총장실로 가서 유 선생도 그 자리에 계신 자리에서 간밤의 일을 말씀드렸더니 두 분은 껄껄 웃으시면서 ʻ황 선생도 이제는 한 몫 하는 교수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편지를 매일 받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시요.ʼ 라고 말씀하는 것이었다.

나같이 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교수한테는 강의 끝머리에 반드시 민주가 좋은가 공산이 좋은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만일 공산이 나쁘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에는 그 교수 집에 항상 이러한 협박 편지가 날아드는 것이고 반대로 민주가 나쁘다고 말하는 교수가 있으면 그 교수는 한 낯에 학교 교정에서 우익 학생들에 의하여 집단 폭행을 당하였다. 그 당시 고려대 학생이었던 이철승 군은 이러한 우익 학생의 전국적인 대표였으며 교수들은 모두 그를 무서워하였다.
 
▲ 반탁학련 위원장 고려대학교의 이철승 ⓒ KBS 방송 프로그램 '한국현대사 증언 TV 자서전' 캡쳐

또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는 신도성 교수가 과장으로 있었는데 교수진이 아주 부족하여 고려대학교에서 지원해 주기로 하고 김상협 교수가 정치학개론, 한태연 교수가 경제원론 그리고 내가 법학통론을 지원 강의해 주고 있었다. 소위 문리대 8강의실이라는 곳에서 강의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강의 도중에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에게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인데 왜 자꾸 김일성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하는지 말조심 하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대답하기를 ʻ내 고향은 평양이지만 해방 이후 나는 한 번도 이북에 가본 일이 없어서 그곳 사정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이란 자가 정권을 잡고 공산주의를 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나라에서는 풀로레타리아 독재를 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평양에는 못 가 보았지만 레닌의 이 책을 근거로 김일성도 공산독재를 하리라고 말했던 것이니 이 말에 불만이 있으면 자네들 상전인 레닌에게 따지라ʼ고 하였다.

이것으로 그날의 일은 무사히 끝났지만 나는 그 학생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승윤 군은 생각이 난다. 이군은 나중에 건국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 해방공간의 좌우갈등 / 종로에서 서로 격렬한 대립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우익 성향이 짙었고 그것은 이철승 군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군은 전국 우익대학생의 총 두목으로 그 세력은 대단하였고 이 군을 따르는 일당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는 연구실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한 학생이 그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철승 군의 일원이며 인촌 김성수 선생의 경호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옆에 차고 있던 권총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내가 지도하는 과목에서 낙제점을 맞았는데 인촌 선생을 모시고 다니는 관계로 학업에 전념할 수가 없으니 사정을 좀 봐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거동이 매우 불쾌한데다 그를 교실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아듣기 좋게 말해 주었다. 현재 고려대 학생들이 나같이 제국대학을 나온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고대의 전신인 보성전문 출신의 교수가 부족해 별 도리 없이 우리 같은 제국대학 출신 교수들이 와서 강의를 해 주지만 이 대학에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며 있는 동안만 이라도 자네들이 커서 이 대학을 맡을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훌륭한 대학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자네들 모교가 될 이 대학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전력을 다할 시기에 성적 나쁜 학생이 권총을 가지고 와서 협박한다고 점수를 주는 따위의 짓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설명하였다. 학생은 굽실거리면서 나가버렸고 이 학생을 나중에 피난처인 부산에서 만난 일이 있다.

이뿐이 아니라 졸업식이 끝나고 사은회가 열렸으나 우리 제국대학 출신교수 들은 초청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성전문 출신 교수인 김안진(민법), 심호상(형법) 두 사람과 교주 김성수 씨의 조카인 김상협 교수만 초대하여 사은회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박재섭, 차락훈, 현승종, 서임수, 김경수, 변우창, 윤종섭 교수 등은 모두 사은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 다음부터 나는 고려대학교 졸업식에는 일체 참석하지 않았다.

한번은 시험 감독으로 들어갔다가 노골적으로 컨닝을 하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학생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컨닝을 하자 시험이 끝난 다음 나는 그 학생의 답안지를 들고 유 학장한테 갔다. 이 학생을 처벌하지 않으면 내가 이 대학을 그만 두겠다고 학장 앞에서 화풀이를 하였다.

그 다음날 학생회 감찰부 학생들이 나를 본관 앞 풀밭으로 불러냈다. 먼저 감찰부장 신범식 군이 학생들 앞에서 강력히 항의를 하면서 컨닝에 연루된 학생들은 모두 민족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모두 묵인해 주라는 것이다. 신군은 나중에 박정희 정권 밑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냈고 또 컨닝을 하였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나를 매우 따랐지만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심정은 아주 불쾌하였다.

 
  유진오 선생의 발탁으로 고려대학교 교수로 (35회)
  이인수 교수 (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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