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에 대한 열망 (50화)
  제8장 모국방문과 박사학위 덤벼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박사학위의 꿈
 
나는 직장 생활과 토요일 파트타임, 일요일은 교회 활동이 전부였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복판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마지막으로 박사학위(Ph. D)에 한 번 더 덤벼볼 길을 찾고 있었다. ‘네가 공학박사?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말라!’라고 나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사실, 내 조건에서 꿈을 꾸어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꿈을 꾸기 어려울 조건이 여러 개 있긴 했지만….

첫째, 첨단 재료공학이 아닌 재래식 요업(Ceramic)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둘째, 석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님께서 은퇴하신데다, 셋째, 명성 높으신 매커트니 교수로부터 높은 점수(High Distinction)가 아닌 중간 점수(Credit)로 학위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대학교에 박사학위 지원서를 제출하고 싶어도 그분의 추천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성적이 월등한 경우에는 지도교수가 다른 대학으로 가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장학금까지도 알선하는 것이 박사학위 코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매커트니 교수가 내 박사학위 과정을 지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추천장이라도 써주면 좋겠는데…. 그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희망을 품어보다가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갈 때 결심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 결실을 안은 상태에서 가고 싶었다.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 빠른 포기였다.

근무 중이던 ACI 연구소에서는 일단 박사학위 소지자에 대한 연봉이 다르다. 여기에는 각자의 실력 차도 있겠지만,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대부분 리더 역할을 하면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ACI 연구소 경영진들은 업적이 탁월한 사람을 선택적으로 박사학위 코스에 보내주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나는 그 범주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무리 실험실 일을 잘해도 영어(보고서 및 대화)실력이 호주박사들만큼 이르지 못한 나로서는 ACI 연구소에서 보내주는 케이스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사학위에 한 번 덤벼보겠다는 희망은 늘 가슴속에 품고 지냈다.

내가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늘 접하는 단어들은 주로 점토성 토질(Clay Soil), 팽창성 토양(Expensive Shale), 규조토(Diatomaceous Earth), 벤토나이트(Bentonite), 적토(Black Earth), 모래(Sand)…였다. 어느 날, 업무과정에서 NSW 대학교(내가 석사학위 받은 대학) 공학부 소속 토목공학과 토양 전문교수님(Professor, O.G. Ingles)의 자료가 눈에 띄었다.

잉글스(Ingles) 교수님은 주로 ‘토양 안정처리(Soil Stabilization)’에 관한 탁월한 논문들을 여기저기에 발표하시는 분이었다. 그 분야에서는 호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고,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토양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화학약품을 결합하여 일정하게 처리하는 연구가 그분 논문의 주요 주제들이었다. 그것을 이른바 ‘토양 안정처리’라고 한다. 예를 들면, 도로건설에서 도로 표층 밑에 있는 토양이 수분을 흡수하여 부풀어 오르면, 도로가 파괴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시멘트(Cement), 석회(Lime) 또는 특수약품을 결합하여 더 이상 부풀지 못하도록 한 후에 도로 표면을 처리하는 것이다.

 
잉글스(Ingles) 교수

내가 연구소에서 매일 하는 일이 규조토(Diatomaceous Earth)나 팽창성 토양(Expansive Shale)을 이용하여 수분을 빨아들인 다음 부풀게 해서 도자기 접시(Ceramic Dish)를 압축 성형하는 것이었다. 잉글스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주제와 내가 수행하는 업무가 반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잉글스 교수님은 수분을 없애거나 화학적으로 안정 처리한 후 압축하는 것이고, 나는, 반대로 수분을 고의적으로 넣어서 팽창시킨 다음 압축하는 점이 서로 달랐다.

나는 잉글스 교수님의 논문을 유심히 그리고 철저히 분석하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그분의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논문 대부분이 다양한 토양을 상대로 수분 안정을 위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결합해서 안정적으로 물성을 조절하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비가 올 때 수분을 빨아들여 부풀어 오르는 토양은, 도로건설에서는 표층이든 기층이든 도로를 만들 수가 없다. 그분의 최근 논문에서는 호주 내륙지방의 도로공사에서 기층이든 표층이든 토양 안정처리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여 주었다. 토양을 안정 처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시멘트, 아스팔트, 특수화학 약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몇천 리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물자를 조달할 수도 없으며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을 여러 군데서 펴고 계셨다.

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지 토양을 즉석에서 안정 처리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토양에 일정한 열을 가하고, 열 받은 토양에다 강알칼리나 강산성 물질을 섞어 다져주면 시멘트를 첨가하는 것과 똑같이 굳어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런 자연현상을 이른바 홍토화 현상(Laterization)이라 하는데, 그것은 알칼리와 철분이 주축이 되어 시간이 갈수록 굳어지는 일종의 경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자연현상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빨간 돌덩어리가 뭉쳐 있어 단단하지만, 외부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으면 부서지는 덩어리들이 대개는 이 홍토화 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홍토화 현상은 태양열을 심하게 받아 철분(Fe)이 많아진 적토(붉은 흙)에서 주로 발생한다. 그런 홍토화 현상에 관한 연구를 연구소에서 미리 해볼 생각이었다.
 
 
실험 샘플에 대한 긍정적 반응

만일 적토에 낮은 열을 가하고, 열 받은 적토에 양잿물 좀 섞어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 교수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굳어지는 적토를 잉글스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인정을 받는다면, 내 박사학위 길이 어쩌면 열릴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 것이다. 매일 만지작거리는 규조토가 홍토화(洪土化)된다면 다른 토양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수분을 가장 많이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홍토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낮은 온도(약 250℃)에서 규조토를 잠시 가열한 후 거기에다 강한 알칼리(양잿물)를 섞어보았다. 이튿날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아, 규조토가 약간 굳어있지 않은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다른 흙들을 가져다가 같은 방법으로 반복시험 해보았다. 같은 결과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뭔가 화학작용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온도를 좀 더 높여보았다. 결과는 비슷했지만, 규조토가 다른 흙보다 더 단단한 경향을 보였다. 분명히 온도가 중요한 원인임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나는 단단하게 굳은 샘플들을 조심스럽게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잉글스 교수님께 간단한 실험보고서와 샘플을 보내드렸다.
 
얼마 후에 잉글스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제 자기를 찾아와서 대화해보자는 내용이었다.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흥분되었다. 그때는 어떤 말씀도 듣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왠지 자꾸 떨렸다. 

 
  짧은 고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 (49화)
  가족의 안정된 생활 (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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