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차정석 (56화)

ROTC 입단

전역할 시 아들 차정석이가 ROTC에 입단을 했다고 학군단복을 입고 찾아왔다. 학군단은 대학생들 간에 인기가 많았다. 장교생활을 통해 책임감, 조직관리, 지휘통솔력 등 리더십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61년에 창설된 학군단은 그동안 수많은 장교들이 사회로 진출하여 우리나라의 지도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큰 압력단체가 되었다. 대학선후배 이상의 강력한 ROTC 인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장기복무를 한 ROTC장교들은 육사와 동일한 진급, 보직, 교육의 대우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도입된 이 제도는 선진국과 같은 추세로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웨스트포인트보다 ROTC장교들이 미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다. 주한미군에 17명의 장군이 있는데 이중 16명이 ROTC출신이고 1명만이 미국육사 출신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의 대부분이 ROTC출신 장교라는 것은 미국에서 학군단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ROTC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군단에 입단을 한 차정석이가 더욱 자랑스러웠다.

▲ ROTC 후보생인 아들과 함께

아버지가 군복을 벗으니 아들이 뒤를 잇겠다고 한 것이다. 아버지가 못다 한 것을 아들이 해주리라고 믿으며 정석이의 비장한 각오에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과 봉사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생을 살다 보니 자식에 대한 교육문제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 보다 소홀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평균 1년 반 만에 한 번씩 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25번이나 이사를 했던 것이다. 정석이가 학교를 옮긴 것만 하여도 천보초교, 포천초교, 영도초교, 예일초교, 구산중학교, 계남중학교, 심원고등학교 등이었으니 교육이 제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조금 마음을 붙이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려고 하면 또 다시 이사를 하고 전학을 하여야 했으니 자식의 모교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수없이 많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석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도 잘 하고 친구도 잘 사귀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공개투표에 의한 선거에서 당당하게 반장으로 선출이 되어 학교에서 리더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결혼

정석이가 장교로 임관한 후 대위를 달고 판문점경비대에서 경비대장을 할 때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정보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는 박복선 대위였다. 여군인 박 대위는 경북대학교 일어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장기복무장교로 임관했다. 정보학교 일어교관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정보사령부에서 전략정보를 담당하고 있었다.

울산이 고향인 박 대위는 명문가문에서 자상한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랐다. 학교에 다닐 때는 줄곧 장학금을 받으면서 모범생으로 인정을 받았다.

아내나 나의 자식결혼관은 본인들의 의사를 우선으로 했다. 본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면 다른 조건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딸 수진이도 그랬지만 정석이도 본인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양가와 상견례를 하고 일사천리로 혼사가 진행되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주례로 서울 삼각지에 있는 육군회관에서 혼례를 올렸다.

▲ 김태영 국방장관 주례로 한 차정석, 박복선 결혼식

허니문베이비 딸 차민서도 낳았다. 손주 이름은 내가 지었다. 시대에 맞으면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이름으로 했다. 그리고 차씨 가문의 항렬도 고려했다. 며느리와 아들이 군인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갓 태어난 민서가 크면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군인을 좋아하고 시댁식구를 친정식구이상으로 잘 모시는 며느리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동안 아내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속상한 일도 있었다. 마음이 여리고 동정심이 남달리 많은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잘 속고 이용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어려움을 모르고 고귀하게 자랐기 때문에 군인생활의 악조건을 극복하는데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다. 남에게 보증을 잘못 서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집이 없는 군인이라 집을 장만한다고 남의 솔깃한 속임에 넘어가기도 했다. 결국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짐을 감당하지 못하여 전 가족이 함께 고통을 분담하여야 했다. 어린 수진이와 정석이가 받은 충격은 더욱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군무에 매인 몸이라 집안일을 몰랐던 것이 아쉽기도 했다.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슬기롭게 자라난 수진이는 반듯하면서도 강인한 생활력을 스스로 키웠다. 정석이는 학교를 많이 옮기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였고 극한 상황 하에서도 명석한 판단력과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자랐다. 자식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좋은 배필을 만나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부모로서 감사할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