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뜨거운 젊음의 한 때, ‘아주 큰사람이 되어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이 의지를 불태운 것은 돌이켜보면 검은 제복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사실 나의 소박한 꿈은 문경 촌놈인 내가 마포에 소재지를 둔 숭문고등학교에 편입을 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들려준 형의 말이다.
“김석희(金碩熙)라는 한문글자를 해석하면 금이 크게 빛난다는 의미 즉, 큰사람이 된다는 뜻이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바란다.”
물론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평상 시에 푸념처럼 내뱉던 형의 잔소리로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왔을 때, 서울과 시골의 문화적 충격이 너무 큰데 실망한 것이 형의 부탁을 나의 신념으로 다스리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 내가 난생처음으로 막연했지만 나의 인생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큰 사람이 된다'는 뜻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
나는 평생 이 꿈을 나의 좌우명으로 가슴에 간직하고 살았고, 80세나 된 지금도 이것을 내 삶의 좌표로 삼고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생각한 만큼 큰 사람이 못되긴 했지만, 항상 꿈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비교적 내 환경이 허락한 것보다는 큰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 삶의 편력에 결코 후회가 없을뿐더러 항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삶의 고백이고, 신앙의 간증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와 영어 같은 인문학 계통의 과목보다 수학과 물리 등의 이학계통 과목의 점수가 월등히 좋아서 대학에서는 이공계를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입학 시즌이 가까워짐에 따라 고3들은 지망대학과 전공학과에 대해서 담임교사와 일대일로 상담하게 되었다. 내 차례가 와서 2. 3학년 때, 담임하셨던 서원용 선생께 “육사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너는 체격도 작고 지도력이 약해서 육사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너의 형과 상의했는데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추천하도록 했다.”라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어린 나의 판단으로 육사를 생각했던 것은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교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는 몰랐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전기공학을 공부해서는 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공부에 점차 의욕을 잃었다.
그 당시에는 이공대학에서 학생들이 출석은 최소한 3분의 2이상 하지 않으면 무조건 과락을 시키고 또 세 과목 이상 낙제하면 유급을 시키는 제도가 강행되었다. 나는 직장에 출근하다시피 매일 9시에 학교에 가서 5시쯤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어떤 과목을 막론하고 출석은 3분의 2에서 두세 번 넘게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소설이나 수필 등의 책을 읽는 데 보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부터 학과장과 교무처장 등을 수시로 찾아다니면서 문과계통의 학과로 전과시켜달라고 간청했지만, 끝내 허사여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사실은 우리 동기생 40명 중 몇 명은 세 과목 이상 낙제를 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었거나 공부를 한 해 더 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나는 공부도 안 했고 공부의욕도 없었지만 한 과목만 낙제를 하고 전기공학과에서 3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에서 온 강창언이라는 친구의 덕택이었다.
나와 이 친구는 걸어서 불과 5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하숙을 했고 강의실 좌석배치는 성의 가나다순으로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친구 바로 오른쪽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다.
거의 당일치기로 시험을 준비한 나는 이 친구의 노트와 도움이 없었다면 실제보다 훨씬 나쁜 성적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모교에 돌아와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정보통신처장과 기획실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제주대학교로부터 컴퓨터공학과 석좌교수 초빙을 받고 고향에서 후배양성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