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법제가 아닌 실제의 한국가족과 친족을 중심으로 살펴본 바로는 대체로 17세기 이전까지는 점진적인 변화의 시기였으나 조선중엽(17세기)에 이르러 한국의 가족과 친족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전통적인 한국가족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이 시기를 기점으로 형성되어 산업화 이전까지 지속한 것을 의미한다.
가족이나 친족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혼인 거주 규칙에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는 서류부가의 기간이 길었으나 조선전기를 지나 후기에 이를수록 기간이 단축되었다. 이와 함께 가족에 포함되는 구성원의 범위도 변화하게 되어 고려시대에는 결혼한 딸과 사위와 외손을 포함하는 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장자와 장자부(長子婦), 장손과 장손부(長孫婦)와 같이 생활하는 직계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 되었다.
조선후기부터 아들우대, 장남우대 경향으로
또 재산상속을 보면 17세기 이전까지는 아들과 딸(사위) 구별 없이 균분하였으나, 이 시기 이후부터 차별이 생겨 아들우대, 장남우대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제사의 윤행(輪行) 내지 분할(分割)에서 장자봉사의 방향으로 상속된 것도 이시기의 변화다.
이 시기는 양자제도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7세기 중엽까지는 양자를 결정할 때 남편 쪽의 친족과 같게 처 쪽의 친족도 그 결정에 참여하였으나, 점차 처족의 참여는 제거되고 남편 쪽의 결정만으로 양자 결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친생남아(親生男兒)가 없을 때도 근친으로부터 양자를 얻지 못하면 입양하지 않았으나 17세기를 전환점으로 이 시기 이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원친자에게서라도 반드시 양자를 입양하는 양자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족보의 성격이 자손보(子孫譜)에서 외손을 제거하며, 또한 외손만 성(性)을 일일이 기재하는 등 동성동본 자손과 이성 자손을 차별하여 기록하는 부계친의 4계보로 바뀌는 때도 이 시기이다.
가족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이른바 씨족의 형성 때문
이러한 가족제도의 급격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부계혈연집단인 이른바 씨족의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의 씨족 형성은 서류부가 기간이 단축되는 것 등과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 서류부가 기간이 길 때는 불가능했던 아들ㆍ딸ㆍ차남의 차대가 서류부가기간의 단축과 더불어 가능해졌고 또한 족보의 자녀 기재순위가 출생 순에서 선남후녀로 변해갔고, 재산 상속은 남자 우대ㆍ장자 우대로, 제사상속은 자녀 간의 윤행이나 분할제의 지향에서 장자단독봉사제로 변해갔다.
특히 양자제의 보편화는 씨족의 형성ㆍ조직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입양 없이는 씨족집단의 영속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계혈연집단 형성의 하나의 지표는 가족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항렬자 사용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항렬자 사용 자체가 부계친의 집단 또는 조직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고려는 물론 조선 초까지도 불교적 상제(喪祭)가 지배적이었고, 16세기까지도 아들이 없으면 여식(서ㆍ외손)이 봉사를 담당하였으며, 또한 부계 혈연집단인 씨족의 충원인 동성동본의 양자도 거의 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으나 15세기까지는 부계조상 제사를 위한 자ㆍ친손만의 집단인 씨족은 고사하고 그것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조차 결여되어 있다고 하겠다.
가족ㆍ친족제가 조선 중기에 주로 변화한 이유?
그러면 이러한 가족ㆍ친족제의 변화가 어찌하여 주로 17세기, 즉 조선 중기에 변화하였는가를 살펴보자. 이러한 문제는 더 많은 연구자에 의하여 여러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하겠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교의 종법사상(宗法思想)이 일반 민중의 생활에까지 보급된 시기가 17세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조선 중기 이후의 격화된 정치집단 내의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부계친 내지는 남자 중심의 친족집단 조직화의 필요성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임진왜란 이후의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사회집단을 조직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녀균분상속보다는 장자우대상속이 부계ㆍ모계에의 거의 같은 관심보다는 부계 위주의 친족의 조직화가, 그리고 가계의 단절보다는 양자에 의한 자손의 번성과 조상 유지(遺志)의 실천 등이 어떤 시기에는 훨씬 능률적으로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신분제 붕괴에 대처하여 양반계급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고자 부계중심의 친족집단이 조직화 된 것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