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유공의 기술인력_1 (20회)
  제3장 대한석유공사

나와 감이 유공에서 일을 했던 인재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인재들은 다음과 같다.
 
(1) 해외유학 : 이기용, 김철희, 윤창구

이기용은 입사 후 나의 조수였으며 필리핀 기술훈련, 이란 정부 초청 기술 훈련을 거쳐 공장의 생산부 생산계획과에 근무하다가 걸프오일의 기술원조협약(technology Assistance agreement) 훈련까지 받았다. 그러나 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잠적한 특이한 경우였다. 회사로서는 여러 가지 해외훈련 및 현장 훈련을 통해 키워나가고 있던 재목이었으나, 학구열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배저 엔지니어링(Badger Engineering)에서 근무했다.

김철희는 입사시험에 응시했을 때 졸업예정자였고,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채용에 이견이 있었으나 채용되었고, 후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셰브론 연구소(Chevron Research)에서 근무했다.

윤창구는 입사 당시 학도군사훈련단(ROTC) 장교로 근무 중이었고,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유학했으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하였다.
 
▲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울산정유공장 준공 기념 아치 / 대한석유공사는 1964년 국내 최초로 일산 3만 5,000배럴의 정유공장을 준공하며 우리나라 석유산업과 석유화학공업에 새 장을 열었다

(2) 관계 복귀 : 김광모

김광모는 상공부 화학과로 복귀하였고, 청와대에서 오원철 수석비서관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발전계획, 방위산업 발전계획 등의 입안 및 시행에 중추적 참모역할을 했다.

(3) 정유산업 진출 : 김대기, 이은종, 강태영, 인주선, 배광웅, 김찬욱, 김선동

김대기는 이은종, 강태영, 인주선, 배광웅 등과 함께 신설 호남정유로 이적하였고, 공장장을 거쳐 LG건설의 사장으로 근무했다.

배광웅은 후일 현대정유의 공장장이 되었다. 김찬욱은 당시 유공 기술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화공과 출신자 속에서 예외적으로 기계과출신이었고, 공장생산부장을 거쳐 포철화학 사장, 이수화학 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스스로 기계화학전공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입사시험 때 졸업예정자이자 군복무 미필자로 채용에 이견이 있었던 김선동은 신설 한-이석유(지금의 S오일)로 이적했다. 그 후 그는 이란 석유회사(Iranian Petroleum)의 투자 철수, IMF사태 이후 쌍용그룹의 붕괴 등의 사태수습과 사우디 아람코(saudi Aaramco)와의 합작 및 구조조정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S오일의 사장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 1967년 울산의 LPG공장 준공 이후 고사를 드리고 공장 직원 및 간부들과 함께 / 크고 작은 공사를 마친 후에는 항상 시설의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드렸다

(4)엔지니어링ㆍ건설업종 진출 : 성정자, 민석홍, 윤진만, 김종헌

성정자는 서울대 공대 출신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였고, 6.25전쟁 중 부산 피난처에서 직장을 알선해주었던 인연을 계기로 평생 직업상의 동반자가 되었다. 나와 함께 전 화공설계사무소, 대한석유공사, 전엔지니어링 등에서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같이 일했던 고맙고 충성스런 동지였다.

부군은 서울부시장, 강원지사, 건설부장관을 역임한 최종완 박사였는데, 청와대 행사에 동부인하여 참석하면 육영수 여사는 당시의 유공 기술부장이던 성정자 부장만을 ‘대기업의 전문직 여성부장’이라고 반기고 추켜세워, 최종완 박사가 도외시되어 섭섭해 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민석홍은 건축과 출신으로 대한석유공사를 떠나 전엔지니어링, 신한기공에서 초창기부터 나와 함께 일하다가 회사 해체 후에 효성건설 사장을 지낸 후, 캐나다로 이민했다.

윤진만은 대한석유공사 이전에 잠시 나와 같이 일한 인연이 있었고, 유공에서 공채 1기 사원으로 다시 만나 유공, 전엔지니어링, 신한기공을 거치며 민석홍과 함께 초기의 고난과 한때의 번영을 함께 나눈 동지이다.

김종헌은 공장 공무부장을 거쳐 건설업체와 함께 중동의 건설붐에 참여했으며, 후에 선경건설의 사장이 되었다.

(5) 미국이민 : 문인일, 김창규, 은윤석, 최종대, 조원천

많은 사람들이 70년대 중반에 미국이민을 선택했는데, 국내 경제의 고도성장기인 유공의 합작회사인 걸프오일이 취한 성장 대신 현상유지라는 전략에 대한 불만과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이 주 원인이었던 것 같다.

인상적인 점은 이들이 일반적인 이민자들처럼 세탁소나 주류판매업, 햄버거가게 등 총판권 가맹점을 운영하지 않고, 미국의 일류 설계ㆍ건설회사에서 전문직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공의 국제수준의 훈련 및 실제작업을 통해 전문직 엔지니어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사단의 발생과 이직 (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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