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터내셔널 (37회)
  제6장 CEC 이후

1982년 12월에 나는 전엔지니어링, 신한기공, 이수화학의 업체와 여의도 사옥을 대우 김우중(金宇中) 씨에게 인도하고 두 손을 털고 나왔다. 인수 조건은 대우가 나의 빚을 모두 안는 것이었다. 김우중 씨는 후에 20억을 주고 이수화학에 대한 이화여대의 지분을 마저 사들였다.
 
내가 빚을 많이 지게 된 것은 이란에서의 미수금 등의 이유로 자금압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우에 모든 것을 넘기고 난 후 나는 전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광화문에 사무실을 냈다.

지금까지 각고의 노력으로 육성해온 기업은 일조에 무(無)로 돌아갔지만 앞으로도 세계를 상대로 일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번에는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여기서 하는 일은 기술개발과 경영에 관한 컨설팅이었다.
 
▲ 1979년 완공한 600여 평의 대지에 지상 10층, 지하 2층(연면적 약 3000평) 규모의 전엔지니어링 사옥. 그러나 1982년 대우에 인도했다. 

나는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일본의 지요다화공과 고베스틸(神戶鋼鐵)의 기술고문 일을 맡았다.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를 이룩했으나 그 과정에서 기술은 전적으로 외국에 의존해왔다. 이것은 산업화 초기에는 부득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더 발전해나가자면 첨단기술이 필요해질 것인데 첨단기술은 많은 경우 기업기밀이기 때문에 쉽게 입수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산업화의 조속하고 꾸준한 추진을 위해서는 독자의 기술을 개발하고 소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기업을 해오는 동안에도 늘 이런 생각이 머리에 있어 후배 기술자 양성에 노력을 기울여온 바였다.

한편 나는 전자재료에 관한 기술개발에 주력하면서 적층(積層) 컈퍼시터에 사용되는 고순도 티탄산 바리움(barium titanate)의 생산기술을 개발했다. MLCC(Multi-Layer Ceramic Capacitors)의 약자로 지칭되는 다층으로 된 세라믹 축전기를 말하는데 컴퓨터 칩의 자료로 적합한 소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장치이다.

세라믹 절연체와 금속 전극을 포함하는 이 자료를 고온에서 연소시키면 밀도와 경도가 매우 높은 고순도 블록이 만들어진다. 나는 여기에 사용되는 고순도 절연체 세라믹 파우더를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발견해 낸 것이다.

이 세라믹 파우더(티탄산 바리움)의 생산은 극도로 높은 온도에서의 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잡한 시설과 비싼 비용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해왔다. 그러나 내가 개발한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여 염가에 쉽게 세라믹 파우더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티탄산 바륨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구미공단에 지을 계획으로 땅을 사서 공장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공장 내부 설계, 기계 구입과 설치, 효율적인 기술개발이 그렇게 단시일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돈 마련이 안 되어 공장 시설을 갖추는데 차일피일 시일이 걸리게 되었다. 구미공단에서는 정한 기한이 넘었으니 더 기다릴 수 없다며 대지와 건물을 회수하여 경매처분에 붙이고 말았다. 따라서 이 기술은 국내 기업화의 기회가 막혀버리게 되었다.
 
공장 건설의 꿈은 사라졌으나 내가 개발한 이 기술은 외국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이 기술로 인해 1996년 미국 뉴욕주 포츠담 시에 있는 클라크슨 대학(Clarkson University)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 대학은 미국 내에서 알려진 과학 분야의 명문이다. 또 1998년에는 러시아의 과학원에서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국내에서는 자금난으로 공장이 경매당하는 곤욕을 치렀는데 외국에서는 이렇게 인정받게 외었으니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밖에도 연료전지에 대한 기술, 수소 에너지, 메탄 하이드레이트 에너지, 환경문제 등 21세기의 에너지 문제와 사회의 지속적 실천에 대한 기술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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