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전민제 회장님_1 (3)
  제8장[부록] 후배들의 회고담

김찬욱(金讚煜) 전 이수화학 사장    
      
특별한 인연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나의 인생에서 전민제 회장님은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 가운데 한 분이시다. 전 회장님과 인연은 1962년 대한 석유공사(現 SK에너지)의 공채 1기생으로 입사하면서 시작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의 일이다. 전민제 회장님이 대우그룹에 넘기셨던 기업가운데 이수화학의 경영을 내가 10년 가까이 책임졌던 것도 특별한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군에서 재대하면서 어느 주물공장에 입사하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하루는 울산개발본부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기계과 대학동기가 와서 울산에 건설되는 공장 가운데 정유공장에서 처음으로 사원 공개모집이 있으니 한번 시험 쳐보라는 것이다.

나는 전공이 기계인데 무엇 하겠느냐고 하니, 울산공장에는 비료공장도 들어오고 제철소도 들어서게 되어 있으며, 입사하면 해외 훈련도 보내준다고 하기에 나중에 제철소가 생기면 그쪽으로 옮길 요량으로 응모하게 되었다.(나는 공군사관학교 기계공학과 교관으로 있을 때 금속재료를 강의한 바 있다)

시험은 10월 24일 공휴일이었던 유엔창립기념일(UN Day)에 청파동에 있던 신광여고에서 치렀다. 그때는 직장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많은 지원자가 몰렸으나, 운 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 입사한 선후배 동료들을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첫 출장

전 회장님과 있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전 회장님(당시 기술이사)과의 울산 출장 이야기다. 나는 입사 후에 기획부 건설과에 배속되어 건설관련 업무를 보고 있었다. 입사하고 며칠 지나서 전 회장님을 모시고 울산공장을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출장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어른을 모시고 간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멋있게 하여 모시겠다고 생각해, 제대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맞추어 입은 새 양복과 오바코트로 잔뜩 모양을 내고 서울역에 나갔다. 전 회장님을 뵈었더니 겨울 점퍼 차림이었고, 같이 가는 유니버셜 프로덕트UOP 회사의 서울 주재원 Mr Potter씨 역시 점퍼차림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몹시 민망스러웠다. 현장 출장은 편리한 작업복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7시간 걸려 울산에 도착한 후 곧바로 시발택시를 타고 용연동(원유저장소 부지)으로 이동하였다. 전 이사님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토지조성공사 조성의 자문용역을 맡았던 James & Moor 회사의 Mr. D. V. Robert씨와 도화설계의 정명식 상무(후일 포스코 회장 역임)를 만나 현장에서 회의를 주재하셨다.

그때는 건설사무소가 개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회의를 하셨다. 나는 회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네 분이 이야기 하는 것을 뒷짐지고 구경만 하였다. 다들 영어를 잘 하신다고 부러워하면서...

그날 저녁 전 이사님과 한 여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때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희미한 촛불 아래서 말씀을 듣게 되었다. 여러 말씀을 하시는 중에 오늘 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좀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할 수 없다고 말씀 드리면서 진땀이 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였다면 도화설계의 정명식 상무님을 찾아가서 협조를 구하여 책임을 다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전 이사님이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을 그런 일을 시키려고 하셨을 터인데 말이다.

그날 나는 전 이사님으로부터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조선석유에서 보수를 받지 못하면서도 관리인으로 계시면서 우리나라 정유공장 건설을 위한 꿈과 열정으로 애쓴 결과, 이제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많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정유공장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달러 부족으로 공사는 중단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에 전 회장님이 계섰기에 걸프오일회사와의 차관과 합작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되었고 다시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2006년 서울대 공과대학이 개교 60주년을 맞아 한국공학 한림원과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을 수상하고

지금 와서 보아도 전민제 회장님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나라 정유산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공학한림원과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선정한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공헌한 60인의 공학기술자‘ 중에 정유산업 부분에서 전 회장님이 유일하게 선정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전 이사님과 나의 운명

두 번째 이야기는 대만에 훈련 갔던 이야기다. 건설과에서 내가 주로 한 일은 건설회사였던 Fluor와 기술용역회사였던 UOP와의 업무 협조 그리고 관청 등 대외업무였다. 영문공문을 자주 써야 했는데 영문 초안은 내가 작성을 하고 영어를 잘 하였던 같은 과의 남정국 씨가 수정을 하여 주면 그것을 들고 전 이사님께 결재를 받으러 가곤 하였다.

그러면 거의 매번 철저히 챙기시고 완벽하게 고친 다음에야 발송하게 하셨다. 국내 공문도 철저하게 보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공문의 내용뿐만 아니라 영어 단어 하나에도 소홀하심이 없으셨다. 그때 서울에서 1년 가까운 기간 말단 사원으로서 전 이사님을 모시면서 지적받으면서 훈련받았던 것들이 훗날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1963년 하순 이공계 입사 동기생들은 미국과 필리핀으로 다 연수를 떠났고 건설과에 있는 몇 명만 남았다. 그래서 전 이사님께 여쭈었더니 대만의 중국석유공사CPC에 보내주셨고, 그것은 생산부 운전요원 연수였다.

그런 연유로 생산부 생산과 초대교대 반장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름 생산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말이다. 그 후 동력과장으로 발령받아 기계과와 관련된 업무를 좀 하는가 했더니, 얼마 안 있어 송유과장으로 발령이 나고 송유담당 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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