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월경 2차 도전 3차 성공 (6...

다음날 일행은 전날의 실패를 재정비하여 안내자로부터 철저한 재교육을 받고 다시 월경할 것을 결심하며 저녁 조수 때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일행 중 나의 친지 한 분을 비롯하여 몇 명은 포기하고 또 다른 몇 명이 가세되어 출발을 하였다.

그날은 더욱 조심 또 조심 주의를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갯벌을 걸어 나갔다. 역시 나는 두 번째 열에 끼어 앞 팀만 주시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적지를 얼마 안 남겨 놓고 조심하느라고 잠깐 풀포기 뒤에 앉아 전방을 살피고 있었는데 이것이 또 무슨 일인가 앞에서 검은 물체가 나타나더니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나는 전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우리를 잡으러 오는 줄만 알고 사력을 다해 또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느덧 출발지점 오막살이집까지 단숨에 왔는데 앞서가던 안내자도 곧 뒤따라 와 어찌된 일이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안내자는 앞서가다가 우리 일행이 보이지를 않아서 잠깐 찾아보려고 돌아가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막 도망을 치니 큰 소리를 칠 수도 없고 해서 결국 끝까지 같이 되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 날은 자라보고 놀란 놈이 솥뚜껑보고 놀란 격이 되었던 것이다. 일행들은 어이가 없어서 한바탕 웃어 버리고 역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 다시 도전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다음날이 또 다가왔다. 삼세번 째라 더욱 조심해서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고요한 조각달이 비치는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뱃머리에 앉아 집에 남아 있는 처자와 부모님을 생각하니 정처 없이 홀로 떠나는 나의 나그네길 참으로 쓸쓸하고 막막하여 외로운 그 심정 어찌할 바를 몰랐다.

뱃머리에 앉은 나는 답답하고 외로워서 사공에게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공의 대답인즉 이곳은 이미 38선을 넘어섰으니 여기서는 어떤 큰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는 답변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배낭 속에 있는 클라리넷을 꺼내고 있었다. 두 동강으로 되어 있는 클라리넷을 아래위를 맞추어 소리를 내 보았다.

며칠 동안 그 난동 속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송으로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이 구슬프게 고요한 어두운 바다 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나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그 여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내 생애에는 잊히지 않을 귀한 추억의 한 장면이었다.

▲ 3.8선을 넘었다는 사공의 말을 듣고 클라리넷을 꺼내 찬송가를 연주했다 [사진은 강상복 다큐멘터리에서의 장면]

어느덧 날이 밝고 남한 땅 청단(靑丹)이라는 곳에 우리는 하선하였고 사공은 다시 북으로 되돌아갔다.

청단에는 미군 군인 천막들이 즐비하게 10여개나 쳐져 있었다. 그곳에 대량으로 월남하는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한 일은 온몸에다 디디티 하얀 살충제를 옷 속에까지 뿌려 주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몸에 이가 득실거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TV 화면을 통해 보고 있듯이 그 당시에도 같은 생활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약 1주일 정도 조사 겸 숙식을 제공하고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나는 서울로 가기를 희망했고 예정대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때가 1946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서대문에 사는 먼 친척집을 찾아갔다. 친척의 촌수도 모르고 물론 그전에 만나 본 적도 없는 분이지만 부친께서 어디를 가면 무엇을 하는 분이 계시니까 찾아가 보라고 하신 말만 듣고 혹시나 어떤 도움이 될까 하고 찾아갔다. 지금은 이름도 주소도 다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가 만났다.

위치는 서대문에 있는 예전의 동양극장, 지금은 문화일보홀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자그마한 한식 음식점이었다. 내가 찾아간 연유를 말하며 도움을 청했으나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음식 대접은 잘 받고 그길로 나와 그 근처에 있는 여관에 투숙을 하였다.

여관 2층에 방을 정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건가 아무리 머리를 짜 보아도 그저 막연하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세월이 약이라는데 하며 막연하지만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하루는 답답해서 가지고 온 클라리넷을 꺼내어 찬송가 몇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 아줌마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와서 하는 말이 아래층 손님이 좀 만나면 좋겠다는 연락을 전하려 왔다는 것이다.

나는 불던 악기를 접어 두고 주인 아줌마를 따라 아래층 어느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알게 되었지만 이승길 목사님과 김락현 장로님 그리고 이 목사님의 장남, 세 명이 계셨고 방 한쪽에는 드럼(북)과 트럼펫 트럼본이 놓여 있었다.

이승길 목사님은 유명한 부흥강사님으로 토마스 전도대를 조직하여 황해도 옹진 방면으로 전도 집회를 떠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마침 2층에서 내가 부는 클라리넷 소리를 듣고 몹시 반갑기도 했지만 나를 전도대에 같이 합류할 것을 권유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즉석에서 승낙을 하고 동참하기로 하였다.

나는 그때 서울에 와서 아무도 나를 불러 주는 데도 없는 처지여서 우선 어떤 형태로든지 의지할 곳을 정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고 또 유명한 목사님과 같이 다니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된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멤버가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