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출입한다. 전자에는 음악인들이 출입하면서 오페라단을 탄생시킨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경영하던 다방 건물 6층에 자그마한 사금융회사 하나가 있었다.
그 회사 임직원들이 출입하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는 그 회사 인수 운영을 나에게 권유하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회사 임직원이 7-8명에다 자본금도 극히 영세한 할부금융회사였다. 그 당시 나의 경제능력으로도 적당해 보였다.
사실 다방영업은 의젓한 사장 책상 하나 없는 그야말로 얼굴 없는 사장에다 하는 일이라면 희미한 조명 밑에서 많은 고객들의 출입으로 인한 오염된 공기나 마시며 앉아 있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전부라고 하겠다. 물론 그보다 몇 배 못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교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던 지식인에다 인텔리급에 해당한다고 자처하는 자부심에서 무언가 사무적인 사업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금융회사라면 흥미가 담겼다. 그래 며칠간 자세한 내용을 탐지한 결과 인수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금융이라는 금자도 모르는 나는 하나하나를 배워가면서 약 1년간 다방업과 겸직을 하였다.
그러던 중 당시 소위 8.3조치라고 해서 전국에 만연되어 있는 사금융과 무진회사 등을 공금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에서 성업 중인 상호신용금고법을 도입하여 상호신용금고 신규인가를 내어주겠다고 일정한 양식에 의한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규 인가를 내어보려고도 했으나 일정한 자본금이라든가 그동안 영업실적에 의한 납세관계 등이 미달하여 그만 시기를 놓치고 있던 차에 인가를 받아 놓고도 영업이 부진한 회사가 있어 그런 회사를 인수하기로 하였다.
인수한 회사는 용두동 모 주유소 2층에 있는 삼환상호신용금고였는데 자본금 3천만 원으로 하는 할부전업 금융회사였다. 신규인가는 71년 12월이었고 내가 인수한 때는 72년 2월이었으니 영업을 아직 시작해 보지도 못한 회사였다.
당시 인가조건이 전업금고는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여수신 업무를 할 수 있고 할부전업금고는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여신업무만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본금 규모에 따라 전국에 전업금고 240여 개와 할부금고 60여개 등 약 300여 개의 신용금고가 정부의 엄격한 규제 하에 운영되는 공인된 서민 금융으로 탄생하였다.
전업금고의 주 업무는 소위 무진 업무였는데 다시 말해서 가정주부들 사이에서 만연되어 있는 사설 “계”를 공식화한 업무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근 100개의 전업금고가 불실하여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면서 파산했고 나머지 금고들은 점차 공신력을 회복하여 정리되어 갔다. 그러나 할부금고는 자기 자본만으로 여신업무만 하였기 때문에 성장속도는 늘었지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파산하는 행위는 한 건도 없었다.
나는 회사를 인수한 초기에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였으나 그래도 건전하게 성장하여 약 7-8년 후에는 수신업무도 추가인가를 받게 되었고 최종 영업권 양도 시에는 자기 자본도 수십억 원대로 확장되고 여신도 약 200억대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영업점포도 처음에는 용두동에서 시작했으나 종로1가로 옮겼다가 안국동으로 다시 옮겼고 안국동으로 옮긴 후부터는 수신업무도 인가를 받아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또다시 중구 삼각동 금융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는 점포도 금융회사다운 면모를 갖추는 등 명실 공히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회사가 점점 확장하면서 현금을 다루는 회사이기에 중간 책임 운영자가 꼭 필요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장남 희광이가 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잠시 쉬는 것을 불러들여 업무를 배우도록 하였다.
고려대학 사회학과를 나온 그가 금융을 알리는 없었다. 그러나 음악을 한 나도 하는데 배우면 능히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고 처음에는 부장직으로 시작해서 부사장으로 그리고는 내가 회갑의 나이를 맞는 시점에서는 대표이사직을 이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신용금고는 은행출신 은행지점장급 이상의 유경험자에 한해서 대표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상부기관(재무부 산하 신용금고 연합회)의 지침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대표이사는 적격자를 선임해서 맡기고 다시 부사장으로 실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3남 희경이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과를 나와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과장으로 사우디 파견 근무까지 하고 돌아왔으나 또다시 지방근무의 명을 받게 되자 너무나 고달픈 외지 출장근무의 직업을 면해 보려는 생각으로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기를 원해 삼환의 관리과장으로 근무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3부자가 힘을 모아 온갖 정성을 다해 회사를 성장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회 흐름이 모든 업소에는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노조와 경영주와의 힘겨루기가 만연되는 시대로 변천되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까지도 직원들은 노조의 힘을 빌어 대항을 하는 데는 경영주로서 사업에 대한 의욕마저 잃어 가는 형편이었다. 근래에 와서 그 노동법 때문에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IMF 시대에 노동법을 개정하는 등의 정책개정은 이런 것을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하겠다.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전국에는 장애자 협회가 있는데 그 협회에서는 장애자의 자녀나 가족들을 각 기업소에 의무적으로 직원 수 비례에 따라 채용하도록 상부기관을 통해 압력을 넣어 왔다. 그런 시책에 순응하여 남자직원 한 명을 채용한 바 있다. 그 후 회사에 노조가 조직되면서 그 직원이 입사한지 10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그를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하고는 어떤 사안이 있으면 대표이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대좌하여 노사협상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경영자로서 회사를 17년간이나 수없이 많은 애로점을 타개하면서 이끌어 왔다. 그런데 이제 입사한지 1년도 못되는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평직원이 회사의 내정에 도전을 하는 데는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