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자서전 서두에 평북 박천에서 태어났지만 6세 때 부모를 따라 희천 신풍으로 가서 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했고 17세 때에는 황해도 신천으로 가서 청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니까 출생지 박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년기까지만 있었기 때문에 실은 고향이 될 만한 근거가 별로 없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호적상으로는 원적지로 되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큰아버지 댁이라든가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서 가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러보기도 하고 또 호적에 관계되는 문서를 작성할 때는 꼭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저버릴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박천이다.
이렇듯이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월남민들은 이북 5도청을 통해 각도 도민회를 구성하고 각 군마다 자기 군의 월남민들을 규합하여 상호 친목과 유대관계를 갖도록 조직체계를 구성하고 하나의 고향과 같은 구심점을 만들고 있는 것이 군민회의 역할이라고 하겠다.
그 동안 나는 학교 교직에 있으면서 매우 바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고향사업에 관여를 못해 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신용금고를 하면서는 사회 모든 인사와 접촉도 해야 하고 경제적 여유도 다소 있게 되어 1982년에는 군민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2년간 군민회 활성화를 위해 내 나름대로 많은 공헌을 한 바 있다.
첫 단계 사업으로 월남자의 숫자와 모든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군민 수첩을 제작하였다. 그 내용에는 역대 군민회장, 역대 명예군수 각 기관장 그리고 8개 읍면민회 회장과 명예면장 그리고 면민들을 면별로 구분하여 약 2천명의 명단과 가족들의 주소록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군민수첩을 제작하면서 느낀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이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월남을 했을까 하는 것에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1.4후퇴 당시 김일성 정권이 싫어서 그야말로 적수공권으로 불원천리 남부여대하고 피난길을 떠나 월남한 것이다. 이 2천 명이라는 숫자는 다만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 거주하는 분들 만이고 그 외 전국 각지에 산재하여 거주하고 있는 박천군 월남민도 상당수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31대와 32대 군민회장을 역임했는데 그동안 30대까지의 선배 회장들께서 많은 업적을 남겨 놓은 흔적도 있었다. 그것은 군민들을 위해 57,600평이나 되는 묘지를 마련해 놓았고, 장학회를 조직하여 2세들의 교육을 위한 노력을 하였고, 먼저 월남한 선배들은 뒤에 월남해 오며 고생하는 무의탁 자들을 위해 호원과 복지사업을 해왔다.
또 박천군지와 박천향토지를 만들어 고향에 대한 지리, 풍습, 풍토, 언어 그리고 군의 특산물과 모든 형세들까지 자세한 기록을 하여 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겨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박천이 어떠한 곳인가를 간략하게 적어 본다. 박천군은 평안북도 서남 끝 평안남도와 청청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하여 동쪽에는 영변군, 남쪽에는 청청강을 끼고 평안남도 안주군과 접하고, 서쪽에는 황해와 정주군, 북쪽에는 태천군과 접해있다. 그리고 경의선 철도로 청청강을 건너면 사방으로 전개되는 넓은 들 홍경래의 난 때 송림리 싸움터로 이름난 고장이 바로 박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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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천군 출신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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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는 북위 43도에서 44도 사이이고 면적은 526.7㎢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351.7㎞, 평양에서 98㎞거리의 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세는 전장 150㎞의 대령강이 박천군 중앙을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하구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최고 높이 해발 418m의 칠악산을 비롯 200m-300m의 야산들이 있기는 하나 6천정보의 박천평야를 이루고 있는 곡창지대이다.
박천의 특산물로는 청룡면 운모광산에서 생산되는 운모로 그 질이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산면과 청룡면 및 용계면에 걸쳐있는 흑연광맥에서 우수한 질의 흑연도 유명하다. 이는 일본에 연간 5천 톤을 공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공업의 생산품으로는 말총(말꼬리)으로 만드는 챗뿔과 양반계급에서 애용했던 갓, 감투, 탕건 등 여러 모양의 머리에 쓰는 관이 유명하다.
또 하나는 유기그릇이다. 용계면 원산동은 유기공업의 발상지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특히 놋버치, 놋대야, 놋쟁반 같은 대형 기물은 오랜 세월동안 독점상품으로 박천이 명산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다른 고장에 없는 특산품이 많이 나와 예로부터 박천읍을 중심해서 인근 군에서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어 물물교환을 하던 소문난 고장이다.
이러한 박천군민을 위해 나는 이왕 책임을 맡은 바에는 무언가 보람 있는 업적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할일을 찾아보았다. 전자에도 기록했듯이 첫 번째로 군민수첩을 만들어 조직을 강화했고, 두 번째로는 박천군민을 위해 57,600평의 묘지를 마련해 놓았지만 4명의 개인 명의로 등기를 해 놓은 것은 먼 훗날을 위한 보장책으로는 너무나 불완전한 처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다 그 중 1명은 벌써 세상을 떠났고 차후 세월이 흐르면 소유권에 대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재가 있기 때문에 이를 영구보존하기 위해서는 재단법인 박천장학회 명의로 이전수속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생존해 있는 3명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세상을 떠난 1명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매우 곤란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묘지로 사용 못하고 있던 그 묘지를 박천동산이라고 이름짓고 박천동산 관리 규정을 제정하고 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묘지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은 그곳이 박천군민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또 하나의 큰 작업이라면 장학회를 군민회 산하에 두도록 한 문제였다. 처음 장학회의 발족은 고 안제일 씨가 군민의 성금으로 장학회를 조직하여 군민회의 산하에서 운영해오던 것이었는데 홍길현 씨 때에 와서는 재단법인체로 개편하면서 홍길현 씨 개인 사재 2천만 원을 추가 출자하여 5천만 원 기본자산으로 재단법인 등기를 하여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기금증액은 되지 않고 결국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군민회에 다시 환원하는 것으로 하되 출자했던 2천만 원은 환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장학회의 앞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2천만 원은 화수해주고 새로 몇 사람이 힘을 모아 그 금액을 보완하기로 하는 쓴잔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장학회의 이사장직과 군민회장직을 2년간 겸직을 하며 기금 약 7천만 원을 조성하여 후임 이사장에게 인계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군민회 운영이 부진했던 몇 가지 일들을 체계와 질서를 잡아 놓고 나의 임무를 마쳤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