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의지가 뚜렷하신 교수님
김원배
<시인>
필자가 장윤익 총장님과 인연을 돌이켜보면, 대학 4학년 때의 어느 무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그때의 일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어기며 이렇게 웃음으로 자취를 남기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교수님이 야속했던지 한동안 교수님을 피해 다닐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때가 필자의 생각에는 1984년 8월쯤이었던 것 같다.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많은 과목 중에서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과목 하나가 있었다. 그 과목은 다름 아닌 장윤익 교수님께서 지도하시던 전공과목이었다.
너무 큰일이었다. 일반 과목에서도 나와서는 안 될 점수가 전공과목에서 나왔던 것이었다.
참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점수였기에, 교수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말로 표현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전공과목은 조금만 노력하고 출석률만 좋으면 B+이상은 무난하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도 다른 전공과목들은 이러한 필자의 생각처럼 점수가 좋게 나왔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장 교수님의 과목만이 다른 과목들과 비교해볼 때 너무 점수 차가 컸던 탓에 전체 평균평점이 상상외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전공과목이었고, 과대표도 맡고 있었던 필자였기에 어느 정도의 점수 정도는 애교로 생각하며 배려해주시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최소한 B+정도는 주실 만도 하셨다고 생각되었기에 더욱 서운한 마음이 앞섰던 것 또한 사실이었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들다보니 더욱 분이 풀리질 않았다.
이는 다른 과목 교수님들 과목에 비해 장윤익 교수님의 과목은 나름대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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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원배 시인 [출처 ; 김원배 시인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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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자꾸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장윤익 교수님의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교수님께서는 연구실에서 책과 씨름 중이셨고, 나는 중간고사 성적표를 교수님께 보여 드리며,
“교수님, 전공과목인데 점수가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더구나 저는 예비역 학생인데 말입니다.” 라고 따져 물었고,
교수님은 “아무리 전공과목이고 사정이 그리 하더라도 학점은 절대로 수정 불가하니, 너무 억울하면 재수강 신청을 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될 것 아니냐.”며 연구실에서 나가줄 것을 말씀 하셨다.
이에 필자는, “정 그러시면 저의 중간고사 답안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물었고,
교수님은 “그럴 필요도 없네. 왜냐하면 지금에 와서 점수를 수정할 수도 없는 일이며, 더구나 한 번도 학생들의 점수를 수정해 준 일도 없었네.” 라며 가능한 빨리 돌아가 줄 것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든 교수님의 마음을 돌려 조금이라도 점수를 높여 놓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좀 전 까지의 강경한 마음을 바꿔 동정의 점수라도 얻어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교수님... 전 4학년입니다. 전공과목 점수를 이렇게 받는다면 이로 인해 전체 평균평점이 낮아지게 되는데...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선처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쳤고,
교수님은 “아무리 그래도 시간낭비일걸세. 나 같으면 지금 이렇게 허비할 시간 있으면 학업을 위해 힘쓰겠네.” 하며 마지막 남아있는 필자의 자존심마저 꺾어버렸다.
그만큼 장윤익 교수님은 자신의 의지와 소신이 아주 또렷하셨던 분으로 생각되었다. 그러한 탓에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짠돌이 중에 짠돌이로 불렸던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자신이 더욱 안타깝기만 했었다.
그 당시의 솔직한 심정은 교수님이 너무도 야속했다. 교수님의 과목 하나 때문에 전체 성적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도 평균 평점이 낮아 면접고사 때 성적으로 인해 창피당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시 교수님의 과목은 수강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뒤돌아섰을 때의 필자의 심정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때의 심정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힘이 들 정도로 필자에게는 아픔 그 자체였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예외를 두지 않고 소신대로 일을 진행하는 장윤익 교수님을 더욱 더 존경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해서도 그리도 얄밉던 분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필자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출발을 알리는 축복된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가 장윤익 교수님과의 지난 일들을 털어놓다보니 결혼식 애기까지 나오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1987년 12월의 어느 겨울날이었던 것 같다. 그 날은 김대중 후보가 여의도에서 유세하는 날이었다. 예식장이 있는 영등포역 근방은 사람들의 행렬로 모든 교통이 두절되었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는데도 주례 선생님과 신부와 신부의 부모님들도 도착하질 않았다. 30분이 지나자 신부는 도착했는데, 주례선생님은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 필자 또한 예식장에서 추천해주는 주례선생님께서 식을 진행시켜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뒤, 사회자에게 안내 멘트를 부탁하기 위해 식장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어이구... 김군 미안하네. 교통이 두절되어 이리 늦었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교수님께서 말 못할 사정이 생겨 못 오시는 줄 알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미, 미안하네...”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 군,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말 함세.”
“그렇게 하시지요.”
그러니까 1987년 12월 12일은 필자에게는 인생에 딱 한번밖에 없는 축복받는 결혼식날이었지만, 약간의 판단착오로 인해 조금의 시간차만 발생했더라도 틀림없이 주례선생님을 두 분 모셔야 하는 옷을 수 없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예측 못한 돌발적인 사고를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곤 한다.
끝으로 젊음을 후학을 위해 바치시고 그리도 애정어린 교정을 떠나시는 장윤익 교수님의 앞날에 항상 행운과 축복만이 함께 하시길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