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약 (28회)
  제4장 청춘의 편린들

노자가 말하기를, 도가 도한 말로 일컬어지면 영원불변한 도가 아니다. [老子曰 道可道非常道]

그렇다!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도는 형이하학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한갓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도의 느낌을 지니고 있다. 다른 도리가 없으니 부득이 여기서는 이 단어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란 진실은 다 담은 내 얼굴을 지금에 와 생각해봐도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훅훅 볶아대는 지열도 지열이었지만, 내 얼굴은 뜨거운 열화로 이글거렸다. 내 객기가 아닌 진정이 마침내 그녀를 움직였다. 그녀의 눈빛이 맑은 호수처럼 나를 밝게 비추어 주었다. 나의 사랑의 고백을 굴절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따뜻한 연모의 정이 일시에 다발을 끊고 다시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나의 눈은 빛났다. 전신이 후끈 달아오르며 천하를 얻은 쾌재감에 취해 얼얼했다. 

나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수줍은 듯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약간의 상기되고 황홀한 기분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희고 야들야들한 손이었다. 아, 그 옛날 마의태자가 잡았다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가 이러했던가! 변 사또를 봉고파직하고 암행어사 이몽룡이 잡은 춘향의 손이 이러했던가.!

“내일이 마침 7월 17일. 어때요? 제헌절을 기해 우리의 언약을 기념하는 날로 정합시다. 내일 10시 명동에 있는 OO빵집으로 나오십시오. 그러고는 교외로 나갑시다.”

그녀도 내 제의에 수정 없이 따랐다. 우리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무수한 말을 주고받았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곳의 목석도 우리들 진실된 숱한 언어만 듣고, 위대한 시인들이 왔나하고 놀랐을 지도 모른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전전반측(輾轉反側)하며 아름다운 청사진을 꾸미고 있었다. 내일 만나면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할까?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무엇을 주어야 기뻐할까?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어 그저 행복하고 그저 흔감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먼 장래에 대해서도 성급하게 설계를 해보았다. 생각만 해보아도 그것은 가슴이 설레는 ‘스위트 홈’이었다. 그녀를 우리 가정에 세웠을 때 후광처럼 내어뿜는 그녀의 얼굴이 관음보살처럼 돋보였다. 

이튿날 약속시간보다 앞서 빵집으로 나가 그녀를 기다렷다. 그 것이 이성간의 사랑에선 남자가 지켜야 할 기본문법이라 생각했다. 나는 배달된 엽차를 후룩후룩 마시며 그녀의 화사한 얼굴을 기다렸다. 시간이 그때처럼 느릿느릿하다는 느낌을 오늘 이 시점까지도 느껴본 적이 없다. 

이윽고 그녀가 빵집으로 들어서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의아스러워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는 나글나글 보조개 웃음을 흘리며 여동생을 데리고 나왔다며 소개했다. 보나마나 동생더러 내 인간점수를 채점해보라고 데리고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것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남녀교제에는 그런 일이 흔히 있는 일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녀가 상당히 나에게 기울어져 오는 증거임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 동생이 먼저 나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미리 작정해둔 광나루로 나갔다. 보트놀이를 했다. 물살을 가르며 배를 저어 나가는 내 팔뚝은 그날따라 무슨 힘이 그렇게 세었던지, 7천근 솥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는 항우장사 같았다. 

흥겨운 콧노래가 나오고 웃음이 유채꽃처럼 곱게 만발했다. 강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혀도 나는 간지러움을 타지 않고 그냥 저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천하에 행복한 자 나와 보라지. 나보다 더 행운아는 나와 보라지. 이태백이 채석강에서 달 놀이를 하던 그 배엔 아름다운 가인이 없었다. 최북(崔北)의 <선상대취도(船上大吹圖)>에도 여인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일엽편주이지만 미인이 있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나는 김동명 작사인 <내 마음은>을 불렀다. 

내 마음은 호수요 / 그대 저어 오오 /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 최후의 한 방울로 남김없이 타오리다.

▲ 고려대학 시절 / 왼쪽에서 4번째가 필자이다
 
이윽고 보트는 상류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강기슭에다 배를 대어 두고 그녀를 데리고 작은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인적이 드물고 호젓했다. 산새들이 조잘대는 그녀가 풍악처럼 싱그러웠다. 

나는 그녀와 풀밭 위에 앉기가 무섭게 그녀를 껴안으려 했다. 나의 감정은 이미 질서를 잃고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도 손바닥으로 나를 밀어냈다. 아무리 내가 낭만주의 언어와 큐피드의 고결함을 내세워도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녀는 속도위반의 부당성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빨리 달은 쇠는 쉬 식는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데리고 보트로 내려왔다. 보트를 저어 강심(江心)으로 나갔다. 내 최후의 카드를 그녀에게 내밀기로 했다. 나는 젓던 노를 놓고는 앉아서 보트를 일렁거렸다. 그 바람에 보트는 균형을 잃고 가벼운 나뭇잎처럼 좌우로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이 전복의 위기에 직면하자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핏기가 싹 가시었다. SOS의 타전도 하기 어려운 절대 절명의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살짝 뽀뽀만 해. 안 그러면 이 보트를 뒤집어 버릴거야.”

사실 그 지점은 배가 뒤집혀도 수심은 가슴께밖에 안 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 고무타이어도 비치한 터라 안전에는 이상이 없었다. 옷만 젖으면 되니까. 나의 어조는 사뭇 근엄하고 비장했다. 내 표정은 꼭 무슨 일을 저지르고야 말 것 같은 무서운 표정이었다고, 훗날 그녀가 내게 말해주었다. 어떻든 두 번을 거듭했다가 내가 보트를 더욱 심하게 흔들고 거의 뒤집어지는 지경까지 몰고 가자 그녀는 어쩔 수 없는 듯 항복했다. 

“정말 못 됐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애교 있는 몸짓으로 수줍어하면서도 무너져왔다. 이 순간 나는 그녀의 두 귀를 붙들고 두 입술이 짤깍 닿도록 했다. 

사랑의 성스러운 낙인!

그곳이 한강의 넓은 강심 위라 무대효과도 만점이었다. 그림 치고는 최고의 명화였을 것이다. 뱃전에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풍악삼아 우리는 입술을 두 번 갖다 대었다. 

제헌절의 역사적인 사랑의 언약!

그 제헌절이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일생을 행복하게 엮어나가라는 경종처럼 느껴졌다. 어찌 그날이 예사로운 날인가? 그녀가 벌써 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호헌정신으로 영원히 새어나가기로 했다. 

이 역사적인 날이 있은 후로 우리의 사랑은 뜨겁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는 어느 연인들보다 행복했다. 그 사랑이 시간적으로는 매우 경제적이었다. 새삼 데이트의 날짜나 장소를 잡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날이 한 강의실에서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는 동과생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뜨거운 사랑을 지켜보던 학우들도 귀중한 찬표를 던져주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ROTC의 예비사단 훈련으로 방학 중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훈련을 받으러 가지만, 1주일에 한 번씩 꼭꼭 편지를 할 테니 그때마다 잊지 말고 회답을 보내줘요.”

그러나 이 편지 약속은 나의 일방통행에 불과했다. 내가 몇 번이나 전한 내용을 담아 편지를 냈지만, 종 무소식이었다. 나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동안에 변심의 혁명이 일어났을까? 나 말고 황자호동같은 강력한 다른 연인이 나타났을까?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럴수록 군사혁명이 원망스럽고 지겹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내게 실로 커다란 소포 하나가 전달되었다. 나는 즉각 발신인을 살펴보니 내 남동생 만제(萬濟) 이름으로 보낸 소포였다. 궁금증에서 나는 비호같이 그 소포꾸러미를 뜯어보았다. 뜻밖에도 그 속에는 여러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편지는 동생이 쓴 편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녀가 깨알같이 쓴 편지들이었다. 편지 쓴 날짜들을 보니 나와 헤어진 뒤로 거의 매일매일 쓴 편지들이었다. 너무 자주 편지를 보내면 주책없는 여자라고 할까봐 한꺼번에 모아서 보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만지장서(滿紙長書)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써 보내주었다는 그 현실만이 나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나는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구구절절이 명문이었다. 그녀는 문학적으로 재능이 있어 연문(戀文)치고는 백미였다. 무더운 여름 한낮 빨래 위를 다리미질 할 때 나는 향긋한 풀 내음, 달밤에 창문을 열면 달이 구름사이를 달리는 것 같더란 묘사는 실로 순애보와 같고 플라토닉한 사랑의 육법전서였다. 하나도 버릴 말이 없었다. 구구(句句)마다 관주(貫珠)요, 절절(節節)마다 비점(批點)이었다.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27회)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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