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취직 (37회)
  제5장 봉정만리의 여권을 쥐고

우리의 사랑의 행진은 겉으로는 결코 뜨겁지 않았다. 내가 고시 준비를 한다는 것과, 내자의 전형적인 한국여성의 온유함과 은근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열쇠는 내자의 부모님이며 지금의 장인, 장모가 쥐고 계셨다. 

장인은 전매청 공무원을 오랜 하신 분인데다가 충청도의 소위 ‘전주 이씨 양반기질’이 몸에 밴 어른이었다. 그런 장인의 눈으로 볼 때 나의 존재나 위치는 서푼어치도 못되는 한낱 백면서생(白面書生)에 지나지 않았을 것임은 불을 보는 것보다 자명한 일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딴은 산산이 망가진 가정의 허울 좋은 호주요, 책임만 잔뜩 많은 장남인데다가 이렇다 할 변변한 직장도 없는 내게 애지중지 키운 딸을 맡기기가 못내 망설여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령 장인이 아니더라도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짐직한 결혼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혼담이 무르익어가자 내 장인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나는 족보를 들고 가 보여드렸다. 우선 가문과 뿌리를 중시하는 장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족보 중 어느 비탈을 펼쳐보아도 떳떳하고 자랑할 만한 조상을 가졌다는 내 자긍심도 암암리에 작용되었다. 

이 작전은 다행히 적중했다. 족보를 샅샅이 뒤져보던 장인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최소한 뜨내기 날강도 같은 놈은 아니고 뿌리는 단단히 박혀 있는 녀석쯤으로 보신 모양이었다. 완강히 보수적이시던 장인은 그때부터 허혼의 뜻을 비쳐주셨다.   

여전히 장모님은 떨떠름하게 여기셨다. 타처에서 혼담이 들어오기도 했고, 돈키호테적인 나에게 실망이 컸기 때문이라 여겨졌다. 결국은 여필종부로 부창부수란 내훈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나는 1966년 11월 27일 마침내 화촉을 밝혔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송구스러움을 금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망혼(亡魂)이나마 당신의 자부를 보게 된 것을 지하에서도 무한히 기뻐하실 것이라고도 믿었다. 

산방에 촛불이 밝은 밤  洞房華燭夜
금방에 이름이 걸린 때  金榜掛名辰
큰 가뭄에 만난 단비  大旱逢甘雨
타향에서 만난 정든 벗  他鄕見故人

송나라 홍매(洪邁)의 사희(四喜)를 읊은 시처럼, 나에게 이 결혼은 경사 중의 경사였다. 백년을 해로할 동반자를 찾았으니 용이 여의주를 얻은 듯,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더욱이 어려운 난관을 지나 백년해로의 공작병(孔雀屛)을 얻은 셈이니 그 기쁨을 한껏 더했다.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 천사가 합창을 하고 지상의 비금주수(飛禽走獸)가 합창을 했으며, 수중의 어별(魚鼈)도 축하의 무도회를 열어주는 듯 했다. 아름답다는 아름다움이 우리 앞에 가득했고, 착하다는 착함이 우리들 앞에 엎드렸다. 우리는 먹지 않아도 배고픈지 않았고, 가멸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았다. 

우리 사전에는 행복어만 가득하고, 베개만은 언제나 칠색 영롱한 무지개가 서고, 나비는 온 집안의 꽃밭에서 싱그러운 풍악을 잡히었다. 온 천하가 우리 눈 안에 있는 듯했고, 모든 것이 우리 명령일하에 굽히는 듯했다. 
 
▲ 결혼식 사진

그러나 아무리 천정배필(天定配匹)이요, 찹쌀궁합이라 해도 우리는 한 지아비요 한 지어미라는 엄숙한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아비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기 위해, 우선 직장을 가져야 지어미가 부엌에서 구김살 없이 식솔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셀로판지를 처음 생산하는 <유니온셀로판회사>의 입사시험이 있었다. 나는 용기백배 이 입사시험에 응시했고, 영예롭게도 수석 합격을 했다. 

합격통지서를 받자 고등고시에 낙방하여 잠시 동안 내가 방황하고 실의에 빠졌던 자기비하를 몹시 뉘우쳤다. 나의 잠재능력에 스스로 쾌재를 불렀다. 이 회사에 입사하자 덕소에서 신축되고 있는 공장의 현장에 배치되었다. 공인회계사로서 현장에 장부 조직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앞으로 공정관리와 원가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건설가계정에서부터 합리적인 장부조직을 하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좀 떨어져 약간은 실망했지만 처음 얻은 모처럼의 일자리라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이 회사는 본래 가족회사의 성격을 띠고, 운영에 가족과 친지가 깊숙이 간여하고 있었다. 

일례를 들면, 기숙사를 지었는데 그 기숙사에는 그들 운영자의 가족과 친지가 대부분 차지해버렸다. 나는 당초 인사권자가 3개월 이내에 장부조직을 잘해서 업무를 본 궤도에 올려놓으면 반드시 본사에 불러올리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곁눈 안 팔고 열심히 일했다. 나는 그들 가족과 친지 등 측근들과는 가급적 졍면 충돌을 피했다. 

노자가 말했듯이 강자보다 약자가 더 강하다는 ‘치망설존(齒亡舌存)’의 진리를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러했다. 이빨이 강한듯하지만 벌레가 먹거나 나이가 들면 먼저 빠져버린다. 그러나 약한 듯한 혀를 보라. 이빨은 벌써 빠져 없어졌지만 혀는 이빨보다 단단하지 못하나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도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원들과 함께 어울려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사원들은 지금까지 제각기 가진 갈등과 울분을 털어놓으며 진탕 술을 마셨다. 음주의 작태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째 단계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단계이다. 이때는 그래도 이성이 초롱초롱해서 점잔을 빼고 서로의 지위를 존중하고 언행이 흐트러지지 않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되면 취흥이 도도해져서 이백의 말처럼 삼배(三拜)에 통대도(通大道)하고 일두(一斗)에 합자연(合自然)하여 천하와 자연이 다 술잔 안에 맴도는 경지에 이른다. 이성과 감정이 일체가 되어 벙어리도 말을 할 정도로 청산유수가 된다. 음치도 입술 끝에 소위 ‘18번’의 노래를 걸어 산멱통이 찢어져라 부르고, 이른바 ‘덧배기 춤’도 등장하게 된다. 잉엇국 먹고도 용트림을 할 수 있고 보리술을 마시고도 천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호기가 여름의 뭉게구름처럼 이는 단계이다. 사람들이 술을 찾는 것은 이 둘째 단계의 경지에 이르고자 함이다. 

셋째 단계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되면 폭음이나 경음(競飮)을 하여 이성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오로지 꺼끌꺼끌한 감정의 전성시대가 된다. 그러므로 프로이드(Freud)적인 이드(id)나 감추어두었던 고약한 성깔머리가 폭발되며, 그 사람의 가슴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비밀까지도 날개를 달고 튀어나온다. 뿐만 아니라 상대를 도마 위에다 올려놓고 즐겨 난도질을 하는 단계이다. 소진, 장의도 이 지경에 이르면 언어의 문법을 망각하여 횡설수설하게 되고 만다. 천하에 유아독존이 되어 이 지구총의 인총(人叢)이 다 그의 발굽 아래 어김없이 짓뭉개진다. 하찮은 꼬투리를 잡아 찍자 붙고 까탈부리기를 능사로 삼는다. 

이 경지에 이르면 육신도, 벌써 명령계통이 허물어지고 만다. 금준미주(金樽美酒)와 산해진미가 식도를 도로 넘어오고, 눈은 초점을 잃게 되어 청맹과니가 되고, 손은 손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분리되어 갈지자 행동을 하게 되어 원성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최악의 단계이다. 

 
  아버님의 작고(作故) (36회)
  다시, 고시에 도전 (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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