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의 군기 (31회)
  제4장 청춘의 편린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중대장은 가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앉아서 우리들이 용변을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내뱉은 불평을 엿들은 모양이라 했다. 그 중대 사실은 한 동료가 물고 들어왔다. 

그 동료는 어느 날 설사가 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급한 김에 노크도 하지 않고 화들짝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기암을 할 광경을 보았다. 뜻밖에도 그 안에는 중대장이 엉거주춤하고 앉아 있었다. 이 동료는 기겁을 하고 도로 문을 닫고는 도망을 쳐버렸단다. 아마 기합정보를 수집하려고 앉아 있는 게 분명하다고 우리들에게 알려주었다. 

옛날 숙종대왕이 선정을 베풀기 위해 밤이면 미복(微服)을 하여 한양거리를 다니며 민정을 살폈다고 한다. 그날 중대장도 우리의 교육을 위해 그러했는지, 우연히 그 시간에 실제로 생리현상이 있어서 그러했는지, 아니면 좋은 기합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러했는지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서 가끔 만나는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런 고초를 겪을 때마다 우리는 육군 소위 되기가 정말 힘드는 구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반면 이제 진짜 육군소위가 되어가는구나 하는 희망도 솟구쳤다. 어떻게 희비가 반반인 느낌을 가지는 사이 어언 3개월이 되어갔다. 그런데 마지막 졸업코스는 완전무장하고 2킬로미터를 왕복하는 구보였다. 여기서 탈락하는 자는 졸업이 안 된다는 엄포를 놓지 않았다. 

설령 엄포를 놓지 않아도 우리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졸업이 안 된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날 저녁부터 배낭을 단단히 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마침내 그 운명의 이튿날이 되었다. 키가 작은 동료들을 맨 앞에 세우고 ‘앞에 총’ 자세로 구보에 들어갔다. 등때기에선 폭포수처럼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숨이 목구멍으로 차올라 헉헉거리며 뛰었다. 7월의 불볕더위의 열기가 콧구멍으로 치받아 오르며 입에는 침이 바싹 말라 입이 썼다. 

그때 키가 작은 동료 하나는 오줌을 싸면서도 뛰었다. 바짓가랑이에 시커멓게 젖어 흘러내리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를 본 중대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갑자기 공중을 갈랐다. 

“이 소위.”
“예.”

비록 바지에 오줌은 쌌지만 대답은 야무졌다. 

“열외.”
“괜찮습니다.”

이 소위는 그냥 뛰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대오에서 낙오되면 졸업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 못지않게 참을성 있고 강인한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도 이때의 구보에는 가히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능치고 달리며 이를 악 물고 뛰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한편으로는 내 의지를 시험하는 계기로 여기고, 남에게 질세라 바득바득 약간 힘을 쓰며 뛰었다. 드디어 오줌 싼 소위를 포함한 우리 39명 전원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입교했을 때는 겨우 1키로미터 구보에도 3분의 2가 낙오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지 아니한가? 젊음의 위대함! 훈련의 위대함! 인간의지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 군대(경리학교) 시절 / 위쪽 왼쪽에서 2번째가 필자이다

고된, 그러나 보람 있는 우리들의 3개월간의 교육훈련이 끝났다. 나는 경리학교를 졸업하자 육군본부의 직할부대인 육군중앙경리단의 징수계장으로 발령받았다. 징수계장은 전역 장병의 보험금과 기여금 지출업무와 육군의 세입징수 업무 등을 취급하는 직제상 대위나 소령이 보직되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 후 파월장병의 송금업무가 새로이 추가되자 다른 장교가 맡은 세입세출의 출납업무와 유가증권 출납업무 등을 추가로 맡아 가위 과장의 업무비중이라 할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중앙경리단에는 사병도 450여 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장교들은 일주일씩 주번사관 근무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밤마다 9시에 하는 인원점호였다. 참호 때마다 인원에 이상이 없다는 내무반장의 보고가 있게 마련이지만 기실은 이상이 있을 때가 있었다. 외출하여 사병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웃 내무반원이 몰래 숨어들어와 머리 숫자를 맞추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언제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면치레가 되었지만, 그 내막은 몇 명이나 비었는지를 파악하기에는 각 내무반의 배치구조상 힘들었다. 

그러던 중 내가 주번사관이 된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는 사병의 반수 가량에 대해 외출을 허가했다. 이 대폭적인 허가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사병들을 믿고 또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외출 전에 엄명을 내렸다. 

“이처럼 전에 없는 많은 인원을 외출시킨다.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대신, 여러분들도 분명히 나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군기는 군대의 생명이다. 9시 점호 이전에 전원 귀대하라. 만약 한 사람이라도 미귀대자가 발생하면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딴은 그러했다. 군기는 군대의 흥망과 직결이 된다. 그때 군기확립의 대표가 될 만한 나폴레옹의 일화가 퍼뜩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폴레옹이 최고사령관 시절이다. 그는 어느 날 밤 전선 진지를 돌아보다가 어느 보초선에서 보초병으로부터 정지를 당했다. 

“난 프랑스군의 높은 장성이다. 이 보초선을 통과시켜 달라.”
그러나 보초병은 완강히 반대했다. 

“안됩니다. 우리 소대장님께서 자기 명령 없이는 하인(何人)을 막론하고 보초선을 통과시키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그 소대장의 지시를 받기 전에는 비록 높은 장성일지라도 절대로 통과시켜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고집불통인 사병의 말을 듣자 몹시 언짢은 기분이 된 나폴레옹은 그냥 밀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기골이 장대한 보초는 총대로 나폴레옹을 가로막으며 표독스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보초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총살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나폴레옹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뭣이? 임마, 난 너의 군 사령관이다. 당장 비켜서지 못해?”
“못합니다. 소대장의 명령에 군사령관은 예외라는 말씀이 없었으니 보초의 명령을 어기면 총살합니다.”

사병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절세의, 영웅 나폴레옹도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나폴레옹은 임무에 충실한 그 사병을 불러다가 일약 소위로 승진 임관해주었다. 

나는 이 나폴레옹의 일화를 생각하며 9시 점호에 차질 없도록 귀대하라고 강력하게 명령했다. 군기의 엄격한 준수만이 강군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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