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생긴 일 (30화)

언제부터인가 의자에 앉아있을 때 핸드백이 뒤에 잘 놓여있나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몇 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심장학회에 남편을 따라 참석한 후부터였다.

바르셀로나 하면 올림픽을 떠올리게 되고 특히 몬주익 언덕은 태극기를 품고 승리를 위해 한발 한발 숨을 헐떡이며 내달리던 황영조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손기정 선수의 한을 품고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확 뚫리게 해주었던 황영조 선수, 분명 영웅이고 애국자이다.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파리, 로마와는 달리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의 후손들은 가우디의 예술품 덕분에 먹고 사는 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정교하고 절묘한 탑들이 조화를 이루며 질서 있게 서있다.

등 뒤에 놓았던 핸드백을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아
지갑을 열어보니 유로화, 달러, 한국 돈이 몽땅 없어졌다
허탈하기도 하고 가슴이 쿵쿵 뛰기도 하였다

하나하나 높이가 다르고 가늘고 긴 가래떡을 옆으로 쌓아 올린 듯하나 이것은 분명 각가지 모양의 돌 조각임을 생각할 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인간이 돌로 쌓아 만들었다기보다 신의 손으로 빚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이 아닌가 싶다.

1891년 가우디가 건축설계에 참여하여 120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미완성의 이 성당은 앞으로 100~2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불후의 명작을 만들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니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까 궁금하다.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 금세 갈라지고 땜질하고, 불이나면 폭삭 사라지는 건축물에 비하면 이렇게 진득하게 천천히 올라가는 건축물이 부럽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도심 길옆에 세워진 까사 바뜨요 건축물도 3년이 걸린 가우디의 작품으로 건물 전체는 하얀 석고로 분칠되어 있으며 창문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창살은 뼈 모양을 디자인하여 마치 골다공증을 연상케 한다. 뻥뻥 뚫린 창살 사이로 은은히 비치는 오색 불빛은 마술사의 집같이 우리를 유혹한다.

바르셀로나의 명동인 람블라스 거리는 후안 미로가 디자인한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타일이 깔려있다. 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발로 밟는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다. 중세 유럽의 고풍스런 유물에 현혹되기도 하면서. 언제 서울에서 이러한 여유를 즐겼던가.

▲ 까사 바뜨요 건축물은 창문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창살은 뼈 모양을 디자인하여 마치 골다공증을 연상케 한다 [출처 ; 투자-여행의 기록 티스토리]

몸 전체를 하얗게 채색하고 마치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천사처럼 날개를 단 여인, 까만 망토를 두르고 꼼짝 않고 서 있는 베트맨, 총부리를 겨누고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 금방 싸울 것 같은 표정, 갖가지 분장을 하고 몇 시간이고 서 있는 모델 앞에 몇 푼의 동전이 놓여있다. 이 상자를 볼 때 측은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행위예술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하니 감탄스러울 뿐이다.

젊은이의 향기 가득한 이 도시는 가우디의 예술품으로 장식된 도시이다. 무르익어가는 람블라스 거리의 밤을 즐길 수 있었다.

심장학회는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학구적인 열정은 아직도 남아있어 나의 전공과는 다르지만, 심장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혹시 우리 개원 가에서 진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연제가 있을까 하고 학회장을 살펴보았다. 등록비가 아까워 차마 등록을 못하던 차에 결석한 다른 대학교수님이 계셔서 그의 명찰을 달고 입장하였다.

그곳 등록처에서는 한국인 이름의 남녀 차이를 알 리가 없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오신 여러 선생님과 함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한참동안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심장 의사들의 얼굴색과 언어의 차이를 감상하면서 인간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박물관을 생각해 보았다.

몇 분 후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려고 의자 등 뒤에 놓았던 핸드백을 잡으려는 순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어? 내 핸드백 어디로 갔어!”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저기 의자를 둘러봐도 핸드백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같이 앉았던 선생님들도 당황하여 찾아보고 있는데 카페테리아 입구 문 옆에 얌전히 놓여있는 빨간 핸드백을 가리키면서 “이것 맞느냐?”고 종업원이 물었다. 너무나 반가워 “땡큐!” 하면서 얼른 집어서 가방을 열어 보는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지갑, 손수건, 화장품지갑, 선글라스지갑 등 모두가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후유!” 하고 안심을 했다.

그러나 지갑을 열어보니 유로화, 달러, 한국 돈이 몽땅 없어졌다, 내 사진이 있는 외환 카드는 쓸모가 없는지 그대로 있었다. 안경집을 열었더니 역시 비어있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가슴이 쿵쿵 뛰기도 하였다. 귀걸이 2개가 든 작은 주머니와 카메라도 없어졌다.

순간 한국에서 자주 사용했던 장바구니가 없어진 것이 생각났다. 도둑은 모든 물건을 그 장바구니 속에 담아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또 여행 시 지참하는 가짜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 세트가 생각났다. 진짜 다이아몬드인 줄 알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욕에 사는 출산한 딸을 모처럼 보러 간다고 준비한 약간의 달러와 여권을 호텔에 두고 온 것이었다.

거리도 아니고 학회장 안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의사인데 어떻게 도난 사고가 날 수 있을까? 속도 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하면서 같이 앉았던 선생님들과 함께 경찰에 신고하러 가자고 일어섰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가짜 명패 달고 입장했으니 신고하면 당신도 걸리게 되니까 참는 게 어때?” 모든 사람이 와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바르셀로나 하면 가우디의 멋지고 아름다운 예술품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가방 도둑이 먼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