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달동네 친퀘테레
졸업 40주년 동기회에서 수차례의 회의 끝에 이탈리아 서북부 토스카나 지역을 7박 8일 동안 다녀오기로 하였다. 대부분 동기가 현직 의사이기 때문에 추석을 사이에 두고 절호의 기회라고 하였다. 부부동반 제안도 있었지만 여행 가서도 남편 시중들고 눈치 보기 싫다고 혼자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떠나자고 의견을 모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비첸챠, 이 도시는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작품 전시장이다. 팔라디오는 고대 건축을 연구하여 독자적인 고전주의 양식으로 유럽 여러 나라의 도시계획에 영향을 주었다. 옛 시가지에 28개의 건축물을 지었으며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중세부터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돌바닥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돌바닥으로 변해버렸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중세의 한 순간을 상상해 본다.
시의회 의사당인 바실리카는 팔라디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지붕 위에 전시된 중세 사람들의 기백을 묘사한 조각상은 이 시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실선으로 보이고
해안가 사랑의 향기 그득한 바람은 볼을 간지럽힌다
가장 인상적인 올림피코극장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극장으로 투시 화법을 무대에 도입하였다. 반원형으로 되어있는 객석 중앙에 한참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저 멀리 희미한 가로등이 비치는 고풍스러운 도시가 투시화법과 원근법에 의해 실제 존재하는 듯하다. 이 장치가 세트가 아닌 영구적인 무대 장치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레이스가 달린 고풍스러운 우산을 쓴 여인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벨벳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걸어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괴테는 팔라디오가 건축한 이 극장을 관람한 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라고 표현하였단다.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위치한 파르마는 프로슈토(prosciutto) 햄과 파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 치즈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돼지의 뒷다리로 만들어지는 프로슈토는 20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음식이다.
식당에서 멜론 위에 올려지거나 따로 썰어 진열된 프로슈토를 볼 수 있다. 최상품의 프로슈토가 되기 위해서는 소금, 공기, 적당한 건조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12개월 동안 숙성해야 한단다. 국가가 엄격히 농장의 돼지를 검역하고 몸무게와 위생 상태를 점검하여 관리하고 있다. 퀴퀴하고 습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어둑어둑한 지하 창고에 수많은 돼지 다리가 마치 북을 걸어놓은 듯 질서 정연하게 빼곡히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도저히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 시골 들판을 한참 달려 치즈 공장에 도착하였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철판으로 된큰 원통에 천으로 싼 우유 덩어리가 둥둥 떠 있다. 치즈 1kg을 만들기 위해 16L의 우유가 필요하단다. 12개월을 숙성시키고 탈수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 다음 과정을 거치고 지속적인 건조를 하고 드디어 드럼같이 생긴 모양의 큰 치즈 덩어리가 완성되면 지하 창고에 보관된다.
최상품의 치즈를 감별하는 방법은 망치로 두들겨 소리까지 들어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하여 판매된다. 쾌쾌한 곰팡내와 오래된 우유 썩은 냄새가 처음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하였다. 우리가 메주를 처마밑에 주렁주렁 매달아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드럼같이 생긴 치즈 덩이가 지하창고에 생산된 년도 별로 도장이 찍혀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처럼 많은 치즈 덩어리가 세계로 판매된다니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우리네 김치, 된장, 마늘이 그토록 구박을 받았으나 이제 세계화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 음식도 국력을 따라가는 것 같다.
친퀘테레 국립공원은 이름만 들어도 심상치 않은 곳인데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으로 이탈리아 북서부 지방의 절벽 바위산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안가 달동네이다. 라스페치아 지방의 5개 해안 마을을 차도와 도보를 이용하여 기암절벽을 끼고 걸을 수 있게 만든 길이다. 이 5개 마을은 제노바에서 라스페치아로 가는 중간에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니글리아, 메네롤라, 리오메기오레이다.
라스페치아에서 이탈리아 시골 기차를 타고 몬테로소에 도착하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세계의 관광객이 다 모인 듯 좁은 골목길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길가에는 오밀조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수만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고 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없었다.
리오마조레에서 마나롤라 사이, 연인의 길로 불리는 ‘사랑의 길(비아델아모르)’을 따라 18km의 절벽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 길을 걸으면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니 좁은 도보길 옆의 절벽돌산 사이마다 고리를 만들어 편지글과 함께 자물쇠로 사랑을 채워 놓고 있다. 연인들의 약속 메시지, 그림엽서, 사진 등 갖가지 전시품들은 관광객의 눈을 호사시킨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사랑을 응원하듯 아련하게 피어있고 사랑의 연인 길을 걸어 보기 위해 전 세계 여행객들이 다 모인 듯하다. 한참을 걷다가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는 집시들의 즉흥적인 연주회가 열린다. 여행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춤과 노래가 있는 사랑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사랑의 길을 완주하고 좁디좁은 돌담 계단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오른다. 바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 시골 레스토랑이다. 싸리나무대로 지붕을 엮어 만든 테라스에 앉고 보니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실선으로 보이고 해안가 사랑의 향기 그득한 바람은 볼을 간지럽히며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고 있다. 평생 잊을 수 없고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해풍을 진하게 먹고 숙성된 백포도주에 낙지를 곁들인 채소 샐러드, 각종 해물 스파게티와 얇게 저민 돼지고기 요리, 포커 치오라는 특산 빵, 모든 음식이 우리들의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하였다. 이탈리아 특유의 푸근한 인상의 주방장 아저씨는 해물카레밥까지 대접해 준다.
돌 바위 사이에 펼쳐진 조그만 모래사장에는 불타고 있는 태양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많은 관광객이 누워 있다. 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거품을 한 아름 껴안고 즐거워한다. 절벽 아래에서는 젊은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이빙을 즐긴다.
멀리 바라보이는 돌산 위에 성 같은 작은집들이 옹기종기 계단식으로 줄지어있고 사이사이에 포도나무, 올리브나무 숲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안가 달동네를 연출한다. 멀리 수평선 위에 떠 있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이곳 친퀘테레는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