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사관 후보생 입대 (16회)
  제3장 한국전쟁의 발발과 피난

그때 필자의 건강도 대단히 좋지 못하였으나 최경상 학과장님, 조백현 학장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일단 군입대를 결심하고 영동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여러 가족에 하직인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인민군만으로도 거의 대구가 점령될 뻔했는데, 주력이 팔로군이라는 중공군이 참전했으므로 전국이 공산군에게 점령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니, 전의 중국의 장개석 군이 대만으로 철수하듯이 우리 국군도 일본이나 오키나와로 일단 철수하였다가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본토복구 전쟁을 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군이 부산까지 쳐내려왔을 때의 피장파장의 참전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때에도 군인이 되어야만 먼저 철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이와 같이 되었을 때 잘못되면 부모님과 다른  전가족과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욱이 내 건강이 좋지 못하니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저것 생각할수록 앞날의 일이 암담하다. 에라 모르겠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먼저 결심한대로 입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보따리도 별로 없이 이것저것 헌 옷을 주워입고 1950년 11월 11일에 동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 당시의 동래는 피난민이 넘쳐흘러 여관도 잡지 못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어떤 식당방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날인 12일에 육군종합학교에 입교 입대하였던 것이다. 

피난민으로 초만원 상태인 동래시의 어느 식당 방에서 신세를 지고 1950년 11월 12일 그 당시 육군종합학교가 되어 있는 동래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등록을 하였다. 즉시 입고 있던 사복을 벗어주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원래부터 몸이 좋지 못하나 그저 좋다고 했더니 무난히 통과하였다. 실제 긴장한 탓인지 별탈은 없었다. 큼지막한 군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곧바로 집합이었다. 기세에 눌려 동작이 빨라지고 몸이 굳기 시작하였다. 기합과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처음 시간이 군기와 군법이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기합, 처벌이고 그 다음에 영창이라는 것이다. 밖에 보이는 학교의 담높이가 갑자기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꼼짝없다. 그저 명령대로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식사를 시작했는가 하면 집합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지급받은 신발은 그대로 발에 맞는 것 같아 이름을 새겼으나 일단 집합호령이 나면 내 신발 네 신발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누구나가 다 같이 동작 빠른 사람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신고 뛰어나가니 나 또한 거기에 남은 것 중에 아무거나 신고 뛰어가서 꼴찌를 면하여 기합을 받지 않게끔 나가야 했다. 그러니 신발은 날마다 바뀌고 큰 것 작은 것을 가릴 것 없다. 

변소에 가서 앉아 있어도 언제 집합 호령이 날지 모르니 앞문은 열어 제친 채 목을 기린 모양으로 길게 빼내어 바깥의 동정을 살펴가면서 안절부절 일을 보는 것이었다. 처음 일주일간은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가, 내 자신의 의식에 의심이 갔다. 아마 이 세상의 지옥이 이곳이 아닌가 싶었다. 
 
▲ 1950년 12월18일 대구역에서 한 어머니가 징집된 아들을 배웅하고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

몸은 굳을 대로 굳어 있으나 동작은 빨라졌고, 구대장이 무언가 물으면 버럭버럭 악을 쓰면서 큰소리로 답변을 해야 했다. 밤의 내무시간 때는 신발 밑바닥에 조금이라도 흙이 묻어 있으면 그 신발을 입에 물고 각 내무반에 돌아다니며 선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낮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어 밤에 막 잠을 자려하면 비상이다. 

눈을 비빌 틈도 없이 아무 신이나 신고 튀어나가 선착순으로 집합을 한다. 줄의 끝에 있는 몇 사람은 운 좋을 때는 운동장 몇 바퀴 돌기이나 일진이 나쁘면 물속에 처넣어진다. 동래는 온천지대라 습기가 많은 곳이므로 0도C 근처만 되어도 건조된 다른 지방보다 추위를 훨씬 더 느낀다. 

아마 11월의 말 쯤일거다. 동래에서 가장 추운 어느날 밤중에 또 비상이 걸렸다. 이번에는 팬티바람으로 집합하란다. 큰일이다. 나는 몸이 너무 나빴으므로 노출된 채로 추운 야외에 오래 서 있으면 여지없이 큰 병에 걸릴 것 같았다. 이때를 대비하여 초록색의 얇은 샤쓰를 집에서부터 준비한 것이 있어 이것을 재빨리 말아서 팬티의 뒷주머니에 넣고 쏜살같이 운동장에 달려 나갔다. 

오늘밤은 전교생이 집합하였다. 아마 1,000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넓은 운동장에 가득 차게 줄을 섰다. 바람이 불어 덜덜 떨린다. 

이번 기합의 사연인즉 학교에 물건을 파는 주보가 있었는데, 누가 물건 값보다 돈을 적게 주고 슬쩍 나온 모양이다. 그때 우리가 임대하는 시기에는 공교롭게고 화폐개혁이 있어 돈이 있어도 가져오지 못한 형편이니 후보생 주머니에는 돈이란 별로 있을 수 없었다. 

앞의 높은 단에 올라간 장교인가 잘 보이지 않으나 악을 소리를 친다. 장차 국가의 간성인 장교가 될 후보생이 불명예스럽게도 쓱싹 했으니 그 자가 지금 당장 자수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할 것이니, 당당히 나오라는 것이다. 

누가 나갈 것인가? 10분, 20분 아무리 얼러대도 별수가 없었다. 단 위에 있던 자는 그러면 나올 때까지 그대로 견디어 보라고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큰일이다. 이 추위에 알몸으로 이미 30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이때까지 대학까지 다니면서 쌓은 공이 이제 아무 쓸모없이 무너지는구나, 

나는 키가 작았으므로 열의 뒤쪽에 서 있어서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므로 이때 재빨리 아까 준비한 얇은 초록색 샤쓰를 입었다.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전라 후보생이 병아리 새끼가 어미닭을 종심으로 모이듯이 어느덧 한곳으로 옹기종기 무의식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장교는 어느새 나와서 단 위에 올라가 호령을 하면서 헤치라고 또 악을 썼다. 후보생들은 명령대로 일단 흩어져서 원래대로 정렬하나 반사적으로 또 모이기 시작한다. 이러는 사이 바람이 불어오면 우 하는 소리가 저절로 모두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데 저 지옥에서 나는 비창소리 같았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이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뇌리에서 전개되던 것이 시간이 더 지나니 이것도 마비되었는지 멍하게 되어 의식이 차차 흐려지는 것 같았다. 이제 꼼짝없이 얼어 죽는구나 단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반을 지나니 여기저기서 후보생이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아마 그래도 나는 일제시대에 여러 가지 훈련을 많이 받아서 급할 때에는 다른 젋은 후보생보다는 강한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희미하나마 연이어졌다. 

 
  징집행렬에서 이탈 (15회)
  훈련소의 살벌한 군기 (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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